종교를 초월한 인간의 손, 조각가 최종태
미술로 종교의 경계를 허문 조각가가 있다.그가 한국 현대 조각계의 원로 최종태 작가이다. 구순의 작가가 일평생 창작해 온 작품 157점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러한 이유를 떠나 그는 보기 드물게 한국 미술계에 가장 존경 받는 예술가 중의 한사람이다. 최종태는 여섯 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붓글씨를 쓰다 그림으로 전향했다. 서울미대 시절 그는 대학교 다닐 때 우연히 길가에 ‘불교사상 대 강좌’라는 붓글씨로 쓴 포스터를 보고 처음에는 불경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 세 시간씩 무려 100일이나 불경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그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깊은 종교적 상념이 보인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너무 종교적인 면이 주목받아 그의 작품을 순수하게 보려 하지 않는 세간의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최종태라는 조각가를 존경한다. 먼저 존경하는 이유를 대라고 하면 주저 없이 그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 외에 다른 일체의 명예와 감투에 연연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작품제작에 전념했다.
그가 한 외도라고 하는 건 그림 그리고 판화하고 조각하고 글 쓰는 것이었다. 그는 돈이나 명예에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을 선생은 장욱진이나 김종영 선생한데 배웠다고 했다. 그들은 예술 이외에 대하여는 아주 엄격한 분들이었고 그런 돈과 명예 감투 같은 것은 빨리 잘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다른 것을 마다하고 단지 김종영과 장욱진을 존경하고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이유는 순전히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정년퇴직 후 종이 위에 대략 1년에 3-4천 장의 소묘를 그려냈다.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그 연세에, 매일 같이 아침 다섯 시쯤 일어나 여섯 시 반쯤 신문이 오기 전까지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중 쓸 만한 것을 골라 200장으로 작품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이야기하듯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오로지 작품만을 위한 진정한 예술가의 삶. 어쩌면 이런 모습이 진정한 최종태의 초상이다. 얼마 전 뉴욕을 갔다 온 후 깊은 생각에 빠져 들은 것 같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던 마티스 전람회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마티스가 가진 그 무한한 예술의 폭을 마음에 둔 듯했다. 많은 현대작품을 보았지만, 그들은 마티스에 미치지 못한 듯했다. 20세기 전반기의 대 예술가들은 역사에 한 덩어리를 하나 만들었다고 했다.
20세기 예술로서의 모뉴망이 피카소와 마티스에 의해 이루어진 듯하다. 또한, 미술사에서 그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열반이라고 했다. 내 형태가 자유롭게 세계미술사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했다. 이제 그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그 인간과 예술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실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그의 조각이자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최종태는 회화와 조각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에게 조각은 생명의 형태를 탄생시키는 일로 여기고, 그 생명의 탄생을 위해 구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그림은 그런 구도를 위한 최선의 도구였다. 그러나 옛날부터 종교는 종교고 예술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것의 표현 혹은 종교적 감성의 조형적 구현으로 집약할 수 있는 것이 최종태의 예술 세계이다. 그는 마티스, 피카소, 루오, 모딜리아니를 좋아한다고 했다, 조각가로는 알베르트 자코메티도 말이다. 그는 지금 나무 작품을 계속 변형하면서 몬드리안이 가졌던 가로 세로의 추상 조형으로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지금 세계미술사로부터 내가 얼마만큼 자유로워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모델을 쓰지 않는 드문 작가 중의 하나이다. 모델을 쓰지 않고 조각도 그림도 그려왔고 한번도 모델에 의해서 작업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풍경이나 정물도 그의 작업 소재에서는 멀어졌다. 다만 비전만이 자신을 움직이고 있고, 자연과 인생에 대한, 그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절대적인 확실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고 작가의 진정한 그림이라고 그것을 신앙처럼 믿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형태에 관한 탐구와 믿음에 가까운 존경, 조각하는 일 자체가 구도하는 일이라는 그의 작가정신과 창작에 대한 신념으로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만남, 이성과 감성의 만남,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만남이 곧 그의 조형적 이상이자 목표이다. 이렇듯 최종태가 형태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구도하는 마음으로 인간을 표현하는 일,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태의 조형 세계이다. 그의 예술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의 한 부분으로서 종교성이다.
형태라는 건 가치 있는 것이며 그 가치가 삶 속에서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가. 마티스 그림에서 용기가 나고 기쁨이 있다는 그는 예술의 최고 목표는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다. 그건 기쁨이라고 했다. 그는 고백한다. “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 내 마음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나는 나의 얼굴에 담으려 한다. 그것은 나의 삶 자체일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 사이의 그 이름 할 수 없는 빈 공간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한 잎의 풀이파리처럼 나의 그림은 그렇게 존재한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서 아름답고 숭고한 눈빛과 순결한 삶을 보았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가 한 잎의 풀이파리처럼 그림이 존재하길 그가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인물조각만 해온 작가 이제 그는 한국인의 얼굴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는 중국이나 인도의 불상보다 한국 불상을 보면서 한국인의 얼굴을 본다고 했다. 반가사유상이 가진 모습에서 석굴암의 불상에서 그는 예술의 영원한 이상향을 발견한 듯하다. 그것은 거기서 엄마 같은 큰 품을 느낀다는 것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고민하는 형태인데 반가사유상은 고민에서부터의 해방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륵상에서는 완성된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고 지상에 있어서 모든 시간적인 것의 속박을 넘어 가장 청정하고 원만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예술의 종착지이다. 조각은 ‘생명의 형태’을 찾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단순성·정면성·고요함 등의 예술 조형 원리가 내재해 있다.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신라·백제의 불상, 특히 반가사유상 속에 들어 있는 불심을 내 예술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이고 화제가 될 만하다. 그는 열려있는 신앙인이다. 내 종교가 소중하듯이 타인의 종교 또한 소중함을 믿고 인정한다. 길상사에 법정 스님이 하고많은 불교 신자의 예술가나 조각가를 마다하고 그에게 불상 조각을 부탁한 것은 최종태가 가진 큰 종교 간의 화합이자 화해이자 포옹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 그려지는 한줄기 수평선을 바라볼 때 무한과 영원에 대해 일깨움이 있다는 나이가 들수록 그것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는 작가. 최근 그는 부쩍 추사 김정희의 작품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 이렇게 썼다.
入於有法 出於無法 我用我法 들어갈 때는 법이 있으나 나갈 때는 법이 없고 결국에는 내 자신의 생각이 바로 자신의 법이 된다는 말, 작가는 이제 예술에 관한 진리를 터득했음이 분명하다.
”종교와 예술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저의 예술은 종교를 만나서 오랜 세월을 함께 잘 지냈습니다." 정말 이 말은 평생 에술과 함께 한 원로 노 조각가의 순결한 삶과 예술 그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