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식론 Ⅲ

이것들의 예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미술이 개념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회화는 결코 자연적 기호가 아니다. 순수한 사실묘사라고 말하기 쉽지만 실제로 불가능과도 같다. 그것을 위해 타인의 지적을 받아 수정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아무리 곤란해도 초등도식(initial schema)를 선택하고, 이것을 과정으로 묘사하는데 순응하는 수 밖에 없다. 그 미술가는 시각적 인상이 아니라 자신의 관념이라든가 개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고래를 그린 화가는 반드시 귀가 있는 동물의 머리를 표상하는 도식을 가지고 있고 로마를 그린 독일 화가도 성새도시의 도식에 있어서 성에는 급경사 지붕이 딸려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박명인 미학산책] 도식론 Ⅲ
[박명인 미학산책] 도식론 Ⅲ

또한 노틀담 화가 메리안도 대성당은 좌우 대칭이 아니면 안되었다. 어떤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일반적인 이미지, 즉 도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화가는 그 도식을 출발점으로 만드는 것과 맞추는 것(making and matching)에 의해 작업을 진행시켜 간다. 초등도식(初等圖式)은 관찰하는 것도 불가결하다. 그것이 특히 작품해석에서 채용할 수 있었던 것이 mental set·swap allocation table인 것은 위에서 본대로다. 기대를 갖지 않고 관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며 과학에 있어서 조차 인정을 받고 있다. 칼·포퍼(Sir Karl Raimund Poppe)가 역설한 것과 같이 모든 관찰은 자연에 대한 질문의 결과이며 시도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칸트가 ‘요소적·원리적인 수준으로 함께 이야기한 것, 지각에는 정신이 능동적인 관여가 전제되어 있는 것, 그리고 이른바 정신에 있는 것 밖에 볼 수 없다,라는 것의 옳음이 보다 유의미한 구체적인 활동에서 확인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곰브리치에 있어서는 지각 혹은 해석의 장면에서 ‘mental set’가 창작의 장면에서는 도식이 각각 별개로 논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도식은 창작의 장면에서 작용하는 규제적인 원리이지만 고래(whale), 성새도시, 카테드랄(cathedral, 대성당)은 모두 표상의 왜곡된 예이며, 창조성이 생각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들의 도식이 기능하는 실태는 과거 경험의 집적(集積)에 의해 형성된 기대 혹은 예측에 의한 지각의 규제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것에 대해 참으로 창조론으로 기능하는 도식을 생각한 것으로서는 베르그송의 ‘역동도식(Le sché?ma dynamique)’이 있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말하는 역동도식이 무엇인가 말하자면 그 자신이 거론하고 있는 예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상기하려고 할 때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목구멍에서 나오려고 하는 그 느낌에 주목하는 것이 좋다. 이 목구멍에서 나오려고 하는 느낌이 그 이름의 역동도식과 같은 것이다. 베르그송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기나, 설교사가 그 텍스트의 전체를 암기할 때의 메커니즘, 그위에 창조적인 예술가의 발상 등을 ‘지적노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상기하는데 노력없이 기계론적인 암기로 다음에서 다음으로 말이 나오는 것 같은 것이다. 긴 문장을 기억할 경우를 예로 든다면 기억술의 서적이 가르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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