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은 미를 추구하는 심미의식이고 무관심은 파괴 원인
생산과 파괴의 상충성을 풀어 나가는 지혜
관심은 미를 추구하는 심미의식이고 무관심은 파괴 원인
박명인(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인류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생각하는 것은 심미적 관심이었다. 이러한 심미의식은 도덕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어 예술의 영역에 영향이 파급되면서 가치문제를 야기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확산되는 인간의 심미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안이함과 나태성이 환경을 파괴하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양면성이고 양면의 사이에 변곡점이 생성된다. 또한 현실미는 사회미, 언어미, 행위미 등 도덕적인 생활과 관련되어 선(善)을 지향하는가 하면 창조활동으로 양성(養性)할 수 있고 번민을 씻어 낼 수 있는 창조정신과 관련된 예술미가 있다. 도덕미는 정신적 내면에서 발현되고 예술미는 외적 행위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심미의식이 정신적인 내면과 행위적인 외면이 일체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상충되는 경우가 발생하며 역시 변곡점을 야기하게 된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주제로 선택한 변곡점이란 단어이다. 변곡이란 수학의 원리이다. 일반적으로 평면 곡선에서 곡률의 음양이 바뀌는 점을 뜻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변하고 위에서 아래로 변하면서 중간에 만나게 되는 현상의 점을 말한다. 오산시립미술관에서 환경과 관련해서 응용하고 있는 주제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연환경은 생성과 파괴의 중간 점에 있다고 보는 것인데, 환경을 생각하면 상향성이고 자연환경을 간과하면 파괴 방향으로 하향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중간 점이 변곡점이다.
문명의 발달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명체가 멸종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오산미술관이 수학의 원리를 응용하여 환경특별전을 개최하는 것은 매우 높게 평가된다. 그러므로 「변곡점에서 마주하다」라는 표제에 주지해야 한다. 이는 환경오염이 인류 생명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피부에 닿는 전달이 어렵다는 사실과, 대중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상충되고 있는 현실성이다. 오산시립미술관은 이러한 사회성을 대중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주최하게 된 환경특별전을 통해 비록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람회를 통한 작은 운동이 우선적으로 오산시민들에게 전달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리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어 변곡점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원망(願望)을 하게 된다.
세계는 온실가스, 탄소과다배출, 정크(junk)시대에 돌입한 쓰레기(garbage) 같은 인류의 폐기물들이 자연을 변질시키고 있다. 물론 인류는 미래를 지향하면서 건설과 파괴를 반복해 왔다. 이것은 세계형성적 사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건설적(constructive)이라는 말과 파괴 또는 해체(destructive)를 포함한다. 이러한 양대 현상 속에서 변곡점이 생기(生氣)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풀어 나가는 대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의 포괄적 힘의 균형이 발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산시립미술관의 환경특별전은 프론티어적인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생태학적, 과학적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미술행사로 인한 계몽 역할은 지대하게 작용할 것이다.
미술이란 자연의 미화이다. 인공으로 자연의 형이나 인간의 마음을 아름다운 색이나 선으로 환치(換置)하는 것으로써 원래 미라는 것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다. 인간의 본능이다. 자연의 미는 있는 그대로 자연일 뿐이다. 이러한 자연을 인간이 아름답게 인지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미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미와 인간의 정신세계로부터 발현되는 미의식의 중간 점도 같을 수 없는 변곡점이 된다. 인간이 아름답다고 하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추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구조가 인류를, 세계를 아름답게 여기면 자연은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단순해서 광의적인 생각에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변곡점이 대두된다. 크게는 인류가 작게는 기업이 이 같은 자연 예찬에 애정을 갖는다면 변곡점은 무의미해진다. 자연이나 인류가 한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아름다워질 것이다.
오산시립미술관의 기획의도에 부합하여 출품하는 환경특별전 출품작품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파괴라는 변곡점에 준한 세계형성적 작품들로써 미나 사실, 자연, 구성의 미묘함, 정감, 창조적 개성이나 새로움, 더욱 원근법적 자연주의 미술의 환영성(幻影性)이나 근대예술의 정교한 구성요소가 부정되고 있다.
이를테면, 오산시립미술관의 환경특별전은 주제가 환경인 만큼 강조하고 있는 환경에 역행하는 탄소섬유, 플라스틱 등의 폐쓰레기, 폐자재, 폐건축물, 인공에 의해 변형되어 가는 자연의 실체, 지구 곳곳에서 범해지고 있는 전쟁의 상처, 세계 곳곳에 범람하고 있는 원전사고의 경각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각한 파행은 대중이 알지 못하고 있어서 그러한 변곡점에서 계몽운동을 시도하는 것이 선구적인 형태로 전개하는 오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람회이다.
미술의 성향도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변천해 왔다.
지금까지 신들의 신성, 풍경의 미, 인물의 개성, 종교적인 스토리, 역사적 사건의 한 장면, 혹은 예술가, 그 유파나 시대 등의 감성, 취미, 견해, 작품의 외부 내지는 배후에 있는 것들을 표현해 왔다. 그러나 현대예술의 특징은 그것이 이미 신들이나 인물이나 풍경과 같은 이른바 작품의 외적인 리얼리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시대적 사유가 표상으로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특별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생활환경에 저해되는 오브제를 사용하기도 하고, 일상생활과 파괴 물질과의 변곡점에서 바라보는 사물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작품을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워 환경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인지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환경적 생태 문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문제는 문화적 규범으로 정착하면서 생태계 회복에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미술은 환경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그것은 미술이 추구하는 미적 개념이 자연을 모태로 하기 때문이다. 흔히 자연은 미의 어머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의 역사는 자연주의가 크게 대두되기도 하였고, 자연 예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생태가 훼손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의 미술은 자연을 유일, 절대 또는 근본원리로 보고 모든 현상, 과정을 자연의 힘에 귀착시키려는 자연주의적인 요소를 인생의 초자연적 기초로 하여 도덕적 규범을 세우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미적 의지를 저해하는 변화에서 미술은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고, 미술작품으로 표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간은 태초에 언어가 없었을 때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이것이 점차 발달하여 글이 만들어졌고, 그림과 글은 인류의 문화창달에 기여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그림은 인간에게 전달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이번 오산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하는 전람회 주제의 ‘변곡점에서 마주하다’라는 메시지는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무너져 멸종되어 가고, 이상기온으로 생태계에 이변이 생겨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초래하지 않으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오산시립미술관은 세계의 환경문제와 인간의 무관심이라는 대칭적인 현상에서 변곡점을 창견(創見)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중적인 계몽과 경각심에는 미술이 가장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환경문제는 세계대전 이후 불안과 혼란이 심각하게 야기되고 있다. 누구 한 사람의 문제도 아니고 한 국가의 문제도 아니다. 인류 전체의 당면문제이다. 인류는 항상 위험한 심연(深淵)에 있고, 변하지 않고 안정을 유지할 방향도 없고, 끊임없이 자신을 초극(超克)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과도(過渡)로서의 초출(超出)은 창조이며 동시에 몰락이기도 하다.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동시에 재생을 희구(希求)해야 한다. 이것이 변곡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향상되어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우매한 인간성에 대한 조치(調治)이며 자연과 동화되어 가는 방법이다. 바로 오산시립미술관의 환경특별전은 그런 점에서 상찬(賞讚)을 받아 마땅하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