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정 화가의 여인들

그녀의 그림 속 여인들은 당당하고 화사하다. 바라보고 있으면 여인들이 금세라도 튀어나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야유회를 함께 가자고 할 것 같다. 

Challenging-도약 100F
Challenging-도약 100F

언제든지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갖춘 듯, 그녀들의 의상은 완벽하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양의 원색의 의상을 입은 그녀들의 눈빛은 도도할 정도로 무심하며, 버닛이나 챙이 넓은 모자를 머리에 쓰고, 가느다란 목과 팔에 화려한 액세서리를 칭칭 감은 채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나뭇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Alpha and Omeag 200M
Alpha and Omeag 200M

그녀들은 무릎까지 올라온 부츠의 끈을 동여매고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이를 기념해 스냅사진을 찍는다. 영화의 한 장면이 미장센(Mis en scene)으로 기록되는 순간이다.

화가 강혜정의 인물들은 밑그림 없이 직관적으로 창조된 까닭에 언뜻보면 키치적인 요소가 강한 앤디 워홀의 팝 아트를 연상시키지만, 이렇게 말하면 화가에게는 대단히 실례되는 언설일 듯 싶다. 

Amazing love 200M
Amazing love 200M

워홀은 배우사진과 만화 등 대중적 이미지를 치용하며,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그들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묘사한 반(反) 회화적인 상업 작품들을 주로 내놓았으나,강혜정의 그림은 회화적이며, 예술 중심적이다. 워홀이 색을 달리해 반복적으로 그린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들은 카메라를 향해 살짝 입을 벌린 섹스심벌의 비주체성이 다분하게 느껴지지만, 강혜정의 그림 속 여인들은 화려한 차림새로 함께 어울리고,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활동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Eunoia 아르맏운 생각
Eunoia 아르맏운 생각

유감스럽게도 화가의 그림에서는 남자들의 존재감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인 필자에게 어떤 불편함도 주지 않는다. 화가는 "왜 남자들은 꿔다놓은 보따리처럼 존재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어렸을 적에 4자매가 알콩달콩 지냈고, 지금도 자주 만나다 보니, 여자들을 주로 그리게 된 것일 뿐, 결코 남자를 배제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녀의 그림은 자매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의 작품들은 오브제의 디테일을 단순화한 절제미와 동적인 포션의 입체감을 살린 영화적 미장센 기법이 두드지게 엿보인다. 평소에 인물들과 배경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화가는 그 만의 시선으로 이를 단순화하고 생략하고, 또한 강조히 변형하며 그녀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Link 150F
Link 150F

좀 더 들여다보면 그녀만의 색채 세계가 녹아 있다. 화폭 속의 인물과 배경은 노란색과 푸른색, 빨간색, 회색, 황색으로 선명하게 채색되어, 마치 꿈 속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인물들의 머리와 얼굴, 목과 팔, 몸, 다리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꺾이고 휘고, 늘어지고 흐느적거려 왠지 나른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자매들과 함께, 정오의 호사스러운 점심을 나눈 오후 2시 쯤, 좀더 멀리 바람을 쐬러갈 요량으로 채비를 갖춘 장면이 연상된다.

MZ generation 100F
MZ generation 100F

그녀의 그림들은 잘 읽힌다.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즐겁고 편하다. 다른 회가들의 그림에서 흔히 엿보이는, 오브제를 베끼다시피 똑같이 그리는 모더니즘의 단순함이나, 화가 자신도 모르고 평론가도 이해못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미스터리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Therr Sisters 100F
Therr Sisters 100F

성일권 문화평론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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