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받아야 할 양정화의 풍경화
김종근 (미술평론가)
양정화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영국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가 떠오른다. 런던에서 이발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27세란 최연소 나이로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예술 이외의 것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던 풍경화가.
양정화의 풍경화 그림을 보면서 터너나 콘스터블 같은 작가들이 이렇게 떠오르는 것은 이들이 지지부진 하고 평가 받지 못했던 풍경화를 한층 더 수준 높게 그리고 한 차원 높이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양정화는 그가 태어난 제주도 어촌의 풍경은 물론 눈 덮인 산자락, 숲이 우거진 산 속, 나무들이 수직으로 곧게 내린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을 화면에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내는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어떤 그림들은 때로는 화면을 전면적으로 채우는 답답한 구성으로 산속의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대형작품에서는 배경의 화면을 전면적으로 열어 놓음으로써 풍경화의 극단적인 구도의 신선함으로 차원 높은 구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화풍은 다소 고전적으로 보일 만큼 덜 파격적인 자세로 전형적 자연풍경의 세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들에서는 파격적이며 대담한 구성과 구도를 화면에 응용하면서 주목할 만한 양정화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나는 그의 이런 작품에 주목한다. 특히 100호를 웃도는 대작들에서 그러한 파노라마적인 풍경의 세계가 대담하게 펼쳐진다.
화면 상단의 대부분 공간을 전면적으로 열어 놓고, 하단에서는 극소화 시키는 듯한 기술들을 여유 있게 구사한다.
이 점에서 분명히 그가 기존의 작가들과는 다른 구도와 화법으로 한국의 풍경화를 이끌 것이라는 신뢰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의 풍경들이 완벽하게 새로운 형식과 기법으로 풍경화의 운동성과 역동성을 전부 준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단순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그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들판과 숲속의 경관들을 낭만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양정화는 기존의 구상계열 작가들이 추구하였던, 목가적이며 아늑한 그림 같은 소재를 상당 부분 탈피하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진실을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대담한 구도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언덕의 나무와 속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눈 풍경의 대조적인 구성이다.
수직, 수평으로 나누어지는 구성법, 의도성이 돋보이는 변형된 원근법적인 길. 이것은 양정화 회화가 보여주는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이다.
이렇게 보면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눈에 비친 자연의 풍경에 충실하게 접근하면서 동시에 자연을 적절하게 변용하는 표현양식을 혼용하고 있다.
이런 다양성 있는 화폭은 매우 서정적이면서 전원 풍경에 길들여진 풍경화의 새로운 분위기와 미감을 담백하게 이끌어낸다.
들판에 펼쳐진 현실을 선입견 없이 담아내면서, 경쾌하고 밝은 자연의 풍부한 색감으로 대지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이렇게 그가 본 들춰내고 있는 자연풍경이 평화롭고 맑은 공기로 가득 찬 정취 있는 풍경이다.
그의 이런 감성들은 자연에 대한 로맨틱한 무드와 서사적인 구성이 만나 잘 어우러진 한 폭의 겨울 동양화를 보는 듯 정적인 것도 사실이다.
주저 없이 그는 자연의 단면에 흥미를 가지면서 풍부한 느낌의 정경을 불러내며 아침, 아니면 어수룩한 오후의 눈 덮인 경치를 카메라처럼 포착하고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의 그림이 기존에 있었던 화풍에서 벗어나 자연의 모습에 상상력과 독창성을 가미한 화법의 풍경화로 진행되었을 때 그 평가는 상승할 것이다.
보시다시피 그의 풍경화는 같은 풍경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보는 위치나 거리, 시간에 따라 느낌과 짜임새가 극적일 정도로 다르다. 모든 화면 속의 풍경은 작가들의 특성만큼이나 고유한 의미를 갖는다.
분명한 사실은 작가는 이점을 아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양정화 풍경의 화면구성은 화면의 상하가 명백하게 분할된 공간에서 극적인 긴장감을 살려낸다.
전반적으로 그의 그림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펼쳐지는데 낮은 시점에서 무한한 공간감과 깊이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시선은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지루하지 않으며 열려있는 세계의 자연의 광활함이 스며든다.
이제 그의 화풍은 실경의 영역을 벗어나, 의미가 있는 풍경으로 회화적 구성의 정취와 함께 감동으로 이어지는 지평에서 펼쳐지길 기대한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대작들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들의 아쉬움과 우려를 극복하고 있다.
장중하되 무겁지 않고, 단순하되 가볍지 않고, 익숙하되 진부하지 않은 풍경의 파노라마. 터너나 콘스터블이 주는 감동이 양정화에게서 오래도록 생명력 있게 부활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