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론 Ⅲ

사실에 있어서는 단지 어디까지나 윤곽선만의 미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미적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다른 미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일체를 상징하거나 함유하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미술로서 선이 얼마나 주요한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실례이다. 그래서 소묘적 요소라고 말하면 첫째로 윤곽선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윤곽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체를 그리는데 있어서 주로 전체나 부분의 윤곽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선을 가리키기 때문이며, 이것은 선으로 형의 골자를 위한 것이다. 즉, 조형이라는 가장 직접적인 단순한 방법이다. 이 ‘선’이 소묘의 가장 소묘적인 요소이며, 다른 소묘적 요소, 즉 선의 교향, 물체의 명암, 모델링, 화면의 명암 등은 그 ‘선’을 도와 더욱 소묘의 미적 범주를 확장하고 복잡하게 해 여러가지 심오함에 이르는 기연(機緣, 어떠한 기회와 인연)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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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묘에 있어서도, 형의 선이 주요해서 다른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하나의 일례로서 다른 모델링, 명암, 선의 교착 등의 요소를 버리고, 갑작스럽게 선 위에 색채를 준 것이, 역시 미술적 미에 있어서 아무런 손색도 없어 보인다. 즉, 그림에 전혀 명암이나 원이 부족한 하나의 일례로서, 많은 장식적 미술에도 비슷한 것이 많다. 이것은 소묘뿐만 아니라 모든 미술에 있어서 선 외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색은 선에 의해서만 살려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술가의 ‘내면의 미’는 그렇기 때문에 첫째로 표현을 위해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모든 추상적인 선이 바로 그것이다. 소묘적 요소는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에도 잡히지 않는 일체의 무수한 추상적 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소묘적 요소도 추상적으로 그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들의 요소가 미와 그 법칙에 의해 유기적으로 조립될 수 있어서 미를 실재가 되게 한 것이 소묘이다. 때문에 선의 미를 모르면 미술이 없는 미술가이다. 특히 자연 주의적인 생각으로부터 미보다 사실을 높이 평가하는 근대적인 경향에 있어서 선은 단지 물질의 윤곽으로만 존재한다. 미로서의 선은 현실을 더할 나위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이 생각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미 따위는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근대화에는 현저하게 소묘가 결여되고 있다. 옛날부터 소묘가 안 되는 그림은 대부분 좋지 않은 자연주의에 빠져 있었지만 근대의 인상주의에 있어서는 긍정적으로 주장하게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인상주의에는 소묘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특히 근대의 화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채묘에 있어서 항상 소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소묘는 미의 중요하고 꼭 필요한 부분이다. 소묘를 잊고 있다면 배를 타지 않고 강을 건너려는 것과 같다. 필경 노력을 해도 헛수고로 끝난다. 눈을 가리고 물건을 찾는 것 보다 더 헛된 것이다.

자신의 제작경험으로부터 미를 보다 깊이 알고 소묘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 된다. 그러나 흑백만 가지고 소묘해도 아무 것도 안 된다. 역시 미의 요령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처음부터 소묘가 중요하기 때문에 드로잉만 하고 있어도 아무 것도 안 된다. 상당히 소묘라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미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소묘다운 소묘는 그리는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뭐든지 마음을 매료시킨다. 미감에 충실한 것이 좋고 채묘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채색으로 저절로 소묘를 터득하게 되는 것은 미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곳까지 다다르면 다음에는 소묘를 새롭게 연습해 보면 좋다. 이 연습은 심오한 것을 얻는데 매우 좋다. 단적으로 미를 접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단적으로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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