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론 Ⅱ

테오도어 아도르노
테오도어 아도르노

소묘는 미술로서는 여러 가지 표현요소 중에 비교적 단순한 일부분이다. 미술가는 소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단채(單彩)가 생기고, 결국 화면에는 소묘를 남김없이 색채로 묘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미술은 한층 생생하게 되고, 미의 영토를 더욱 넓히고 풍려(豊麗), 신비(神秘), 무한성(無限性)을 한층 높이게 한다.

   그러나 소묘가 미술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가장 순수하게 직접적인 것뿐만 아니라, 색채묘사를 포함한 일체의 뼈대를 이루는 것도 역시 소묘라는 것이다. 정확히 장식이 미술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장식이 가장 직접적인 미술이라고 할뿐만 아니라 모든 미술에 장식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장식론 및 미술론 참조) 이리하여 장식이라는 것이 미술의 가장 직접적인 발로이며 동시에 일체의 미술의 귀착임과 미술의 형식으로부터는 일부분인 것과 같은 의미가 소묘와의 관계에 있다. 단, 미술로서도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소묘는 미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러나 모든 미술에는 소묘가 있다. 물론 소묘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는 흑백(두 가지 색이라는 뜻)의 화면에 있고, 화면의 표면에서 흑백의 소묘가 사라져 버린 순수한 채묘(彩描, 보통 사실풍의 유화나 수채화는 대개 그렇다)에 있어서도 소묘가 없으면 화면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을 채묘에 있어서의 소묘적 영역이라고 부른다.

   즉, 화면에 있어서 선을 주관하는 물체의 윤곽, 색의 구분 등에 의해 생기는 일체의 직선이나 곡선 모두가 이 채묘에 있어서의 소묘의 영역이다. 다음으로 소묘의 성질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묘는 소묘적 요소로부터 구성되는 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묘적 요소에 있어서의 흑백(또는 바탕 색과 다른 한 가지 색과 두 가지 색)의 영역이다. 즉, 점을 포함한 윤곽선 및 선·점의 병행ㆍ교착 등의 교향(交響) 및 명암의 상태, 둥근 선을 찌그러뜨린 농담의 한가지 색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의 제반 요소의 윤곽선은 가장 근본적이어서 미술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즉, 윤곽선 및 점이 있으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어도 소묘는 존재한다. 윤곽선 및 점은 그렇기 때문에 소묘의 가장 깊은 것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소묘에 있어서도 작품에 있어서의 깊은 영역은 윤곽선 및 점뿐만 아니라 농담의 바탕 칠이나 명암 등으로 한 것도 있다. 적어도 그것들에 의해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윤곽선 없이 그것은 독립할 수 없다. 윤곽을 위한 선을 그리지 않고도 다른 요소가 선으로서의 효과를 만들지 않으면 소묘는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그 제작의 유심적 영역에 있어서 가장 마음을 전하는 수법은 선을 첫째로 한다. 선은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손을 움직이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이다. 점도 그렇기는 하지만, 단지 사용하는 색칠이 지극히 드물어서 어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선에 사용하는 색칠이 많다. 물론 다른 소묘적 수법에 있어서도 마음을 담아서 점을 위해 색칠을 할 수 있지만 선이 색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ㆍ인도ㆍ페르시아 등의 선묘법은 이것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거기에는 하등의 명암이나 모델링은 없고, 물체는 전부 윤곽선만으로 그려져 있다. 명암에 의해 일어나는 미감, 모델링의 미감 등은 거의 없지만 미적 효과 또는 정신적 감명에 이르러서는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단일함은 직접적인 미감을 사람에게 준다. 여러 가지 실상의 정수를 단순한 선묘로 나타낸다는 것은 선묘법이 여러 가지 다른 미적 요소를 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미감 또는 생명감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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