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김종근 (미술평론가)

“두려움과 과 병마가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키 없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에드바르 뭉크의 이 자전적인 발언은 그가 얼마나 병마의 공포와 위협 속에서 살았으며 그의 예술이 얼마나 죽음의 그림자와 맞닿아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비교적 국내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재불 작가 권이나 예술의 출발도 뭉크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의 고뇌와 불안에 가득한 그림들이 이것을 말해준다.
작가는 “그림이란 견딜 수 없어 받아들인 숙명적인 어떤 것”이었다라고 고백했다. 

화가와 연극에 몸담고 있던 바쁜 양친의 품에서 머물기보다는 할머니의 품안에서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 그는 더 이상 피아노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병마에 시달렸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 아저씨뻘인 조각가 권진규씨의 아틀리에서 흙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후에 그가 조각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첫 번째 이유였다.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드라마센터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그는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이었지만, 병은 더욱 깊어갔고 치료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의 유학이 불가피했다.    
파리의 국립미술학교인 에꼴드 보자르에 입학 하면서 그는 세계적인 조각가 발딧치니 세자르 스튜디오의 학생이 되었다. 거기서 그는 조각을 배웠다.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당시 세자르는 이미 현대조각의 새로운 차원을 이룩한 인기 작가이었고 대중적인 연예인이었다. 
아틀리에를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유학생활은 졸업 후에도 세자르의 스튜디오에서 거의 10여년이 넘도록 작업을 함께 할 만큼 세자르가 신뢰하는 작가였다. 
그녀는 결혼으로 세자르 곁을 떠났고 그럼에도 조각에 탐닉했고 매진했다.

아틀리에를 떠나 빌 지프라는 파리근교의 살림집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권이나의 작업들은 매스를 다루는 작가처럼 구축적이고 쟈코메티의 작품처럼 실존적인 그림자들이 엿보였다.
그는 입체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평면 회화로 넘나드는 작은 공간에서 택한 강인한 열정의 소산이었다.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그녀의 은둔과 삶의 불안은 형상성으로 옮겨갔다. 
이 평면에의 관심은 그가 외국에 살면서 감수해야 할 최선의 선택이자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가 이방인으로 즉 “에뜨랑제” 로 살아야 했던 인간적인 고뇌와 개인적인 슬픔의 내면모습은 최근작품에서 한결같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병마와 시달린 체험과 흔적들은 그의 예술이 더 이상 탐미주의적이거나 낭만적인 화풍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벽이 되고 있다. 

밝은 빛깔보다는 어둡고 가련함이 묻어나는 병약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온몸으로 화면에 옮겨온 그에게  표현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숨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어야  한다는 하나의 진실뿐이었다.
이것이 그가 그림을 선택 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숙명을 의미하며 지금 그는 이 세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권이나의 회화세계의 중심에는  이렇게 한 인간이 가져야 할 격렬한 경험이 강렬한 모티브로 자리하고 있다.어떤 특정한 대상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그의 이미지들은 형상적이며 불안하고 애매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전혀 해독 할 수 없는 관념성을 말하지 않는 권이나의 표현법은 그래서 전후에 프랑스 예술가들이 겪었던 앵포르멜적 속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의 회화는 무엇인가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구상성 속에  묻어 두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와 본능적인 감정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는 진지한 인간에 관한 물음이기도 한 것이다. 
구체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를 가지면서 화면은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는 화법이 권이나의 수사학이다.

그 화술로 그의 화폭은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고통과 함께  방황하던 순간들이 마치 빛바랜 스틸사진처럼  되살아난다. 
그것으로  그의 작품 속에  파묻혀 간간히 살아나는 어두운 색채와 표정들은 그림이란 절대적인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가르쳐준다. 
자신이 걸어왔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불안한 사람들의 초상, 그것은 어쩌면 그자신일지도 모르는 모두의 모습을 통렬히 묘사하는 것이다. 


그의 화면 속에 단순하고 과감하게 생략 된 포오즈들, 그들은 어느 화가의 그림들과 닮아 있지 않을 만큼 독창적이며 강렬한 울림과 떨림을 가져다 준다.
무엇보다 그의 독창성과 진부하지 않은 수사법에 가장 중요한 무게를 두는것 그것은 그의 회화가 거느리고 있는 구상성의 신선함과 가능성을 말해 준다.

과거의 기억이 이제는 예술의 출발이자 돌파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만이 가진 어린 시절의 체험이 지금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 깊숙이 도달된 본능적인 부르짖음, 우리가 그의 그림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공통의 코드이다. 원초적인 내면의 자아와 절망을 통하여 인간이 가진 심원한 슬픔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주의 화풍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자신의 회화에 그만큼 진실하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수차례에 걸쳐 반복과 그렸다가 접어둔 물감들의 붓질 속에 서서히 그 형상을 들어내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 그 이미지들을 보자 그가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고뇌의 순간들의 기록이 보일 것이다.
비록 그의 회화적 진실의 인간에 관한 모티프들이 좀 더 서정적이며 사실주의에 근접하기보다는 채도 높은 불투명한 그림자처럼 생략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결코 구체적인 행위의 모습을 화면에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마치 기억속의 한 장면처럼 그는 자신을 말한다. 이렇게 그의 그림은 대부분 뚜렷한 외곽선 없이 간결하게 이미지만 실루엣처럼 말한다. 소설가 조경란의 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감상의 의표를 찌를 만큼 정확하다.

 “권이나 그림을 처음 보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대지에서 나를 쑥 잡아당기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뒤돌아보고 말았다. 조경란의 이러한 고백은 가는 다란 선이 모여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충격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 잡아당기는 힘, 그것은 바로 그가 인간의 모습을 소재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권이나의 작업은  사랑보다는  일찍  병마와 고통이라는 불안한 상황에 직면 해 있던  내면  세계의 `영혼의 고백`이라고 본다.

우울한 분위기의 삶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마지막 언어로 되돌려 놓는 일이 권이나의 예술이다. 
그래서인지 파리에서 제작한 그의 그림들은 마치 치열한 싸움에서 막 건져 올린 듯 전율을 일으키며 캔버스 속에서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은 평소에 집에 걸어 놓고 싶지는 않지만 문득 마주쳤을 때 내면세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마력적인 작품이다. 권이나 작품의 기억과 불안이 오히려 그의 예술을 지탱해주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작업들이 파리에서 병마와 방황과 고독으로 점철 된 시기였다면 지금 그의 그림은 절제와 냉정함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그림들이다.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두려움과 영혼의 고백, 권이나의 불안한 표정

그의 그림이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창자라고 했던 것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고통은 그에게 있어 예술의 시작이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어쩌면 아직 그의 형상을 우리는 모두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생명감 넘치는 뜨거움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도  마리 로랑생이나 신사임당처럼 꽃이나 정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아름답고 덜 흉측스러운 것을 말이다. 
석주미술상 수상 전시장에서 보인 그의 작품들은 분명 구상회화의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게 보이고 있다.
어쩌면 권이나는  뭉크가 26살 때에 말했던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거나 여인네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는 실내는 그림자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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