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는 2024년 11월 24일~2025년 6월 1일까지 '건축의 장면'이 전시 될 예정이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건축의 장면'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건축의 장면'

《건축의 장면》은 24년 전시 의제인 '건축'을 '영상'을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공간예술로, 영상은 시간예술로 분류하지만, 두 영역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중요한 속성으로 공유한다. 건축에서 시간성은 공간 안에서 이용자의 동선을 설계함으로써 표현된다. 

반대로 영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화면 속의 공간뿐만 아니라 시퀀스의 연결 속에서 기억되는 것으로부터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특히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카메라의 눈으로 경험하는 공간은 색다른 역동성을 갖게 된다. 《건축의 장면》은 이처럼 시간성에 기반한 '영상'을 통해 기존의 건축 전시와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나아가 영상의 제작 주체를 건축가와 미술작가로 한정해 다른 출발점에서 만들어지는 시선의 교차를 보여주고자 한다.

《건축의 장면》은 건축과 연결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작가 8명팀)의 작품으로 소개함으로써 관람객 스스로 건축적 상상력을 확장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주거공간, 사무실, 대중교통 시설, 그리고 도시의 풍경 등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틀짓는 건축적인 것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건축적인 상상을 한다는 것은 건축을 매개로 맺어지는 관계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각종 디지털 기기들이 알고리즘에 기반해 제시하는 공간의 이미지들에 휩쓸려 보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듯하다. 우리가 공간에서 신체를 이동하며 포착한 하나의 순간을 필름의 한 프레임이라 가정한다면, 시공간에 대한 일련의 경험은 이 프레임들을 연결해 만든 한 편의 영상이라 상상해 볼 수 있다. 본 전시 《건축의 장면》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일상의 공간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나아가 각자가 감독이 되어 자신만의 장면을 포착하는 색다른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모스 아키텍츠, 로맨스 오브 시스템즈, 2010-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모스 아키텍츠, 로맨스 오브 시스템즈, 2010-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모스 아키텍츠의 <로맨스 오브 시스템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축 영상과 매우 다른 형식을 띤다. 카메라가 건축모형을 수평으로 쭉 따라가는 롱 테이크 기법으로 제작된 영상은 모형의 미니멀한 형태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창문, 굴뚝 같은 건축 요소를 부각시킨다. 영상에서 두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 두 인물이 모두 건축가이고, 이 중 프랭크는 형태를, 앨리스는 기능을 중시하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들은 반복되는 토론을 통해 건축 안팎의 논제를 이야기한다. 영상의 마지막은 두 사람의 화합, 즉 로맨스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건축에서 언제나 중요한 키워드였던 ‘형태’와 ‘기능’의 통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영상에서 건축적 형태는 무대이자 배경으로, 모스는 건축물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주변부의 이야기들에 집중한다. 한편 영상에 등장하는 모형은 모스가 설계한 엘리멘트 하우스(2009)를 모티브로 한다.

모스는 2003년 힐러리 샘플(Hilary Sample)과 마이클 메리디스(Michael Meredith)가 뉴욕에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로, 혁신적이면서도 실용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이들은 실제 건축물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축을 둘러싼 환상, 사유들을 상상하고 건축 활동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영상 매체는 모스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영역으로, <로맨스 오브 시스템즈>는 모스의 건축적 주제의식과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선민, 버섯의 건축, 2019-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박선민, 버섯의 건축, 2019-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버섯의 건축>은 작가가 2017년 일 년간 제주 곶자왈의 숲 속 버섯을 촬영한 영상에 국내외 건축가 13명의 내레이션을 결합한 작품이다. 땅을 훑는 듯한 시점에서 버섯을 클로즈업해 천천히 이동하는 카메라는 마치 보는 이가 마치 곤충이 된 듯 미시세계를 거대한 화면으로 보여준다. 영상은 버섯의 구조를 가까이 살펴보면서 매 순간 생동하는 미시세계의 분주함, 예컨대 버섯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 썩어가는 낙엽, 딱따구리 소리, 햇빛과 온도에 따라 변화하는 숲의 습도 등을 고스란히 전한다. 영상과 오버랩되는 건축가의 내레이션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버섯을 건축물에 대한 은유로 상상하게 하는 것을 넘어 생명의 순환구조에 대한 다층적인 사유와 감각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영상과 내레이션을 어떻게 연결해 해석할지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박선민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 영상, 설치, 출판 등 영역을 넘나들며 말과 이미지,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등 상반된 것들을 연결해 관계 짓고자 시도해왔다. 그의 작업은 미생물이나 원시 자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섬세한 감수성으로 대상을 포착하며, 관습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미쳐 발견하지 못한 것들은 포착하려 한다. 또한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작업과 관련한 단상을 바탕으로 시를 지어왔다. 시인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재료로 시를 짓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박선민은 자신이 관찰하고 기록한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준범, 마름모 또는 평행사변형, 2018-2023-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박준범, 마름모 또는 평행사변형, 2018-2023-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마름모 또는 평행사변형>은 건물의 신축현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이에서 3년간 기록한 영상을 재구성해 만든 작품이다. 관계자가 아니면 들여다볼 수 없는 공사현장이 한층 한층 쌓여져 올라가는 영상은 그 자체로 흥미를 유발하는데, 작품의 제목 <마름모 또는 평행사변형>은 높이가 높아질수록 마름모 형태에서 평행사변형으로 변하는 건축물의 단면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건물 붕괴 사고 뉴스를 접하고 건물을 짓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한편 <마름모 또는 평행사변형>에서는 공사 현장을 제외한 주변을 검은색으로 채움으로써 사실적인 느낌을 덜어내 기록 영상보다는 사진 콜라주나 회화 작업 같은 인상을 준다.

박준범은 2000년대 초반부터 영상 작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상품이 되어버린 도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담아왔다. 그의 작업은 도시의 풍경을 압축된 공간과 시간으로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는 지나쳤던 도시의 속성들을 낯선 감각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이윤석, 39일간의 철거기록 청파동 굴뚝건물, 2021-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이윤석, 39일간의 철거기록 청파동 굴뚝건물, 2021-사진 서울시립미술관

<39일간의 철거기록: 청파동 굴뚝건물>은 이윤석 건축가가 어느 날 출퇴근길에 눈여겨보던 청파동의 한 건물이 철거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과정을 39일간 기록한 영상이다. 이윤석이 굴뚝건물이라 부르는 이 건물은 1938년 철공소로 지어졌는데 내부 구조를 바꿔 사무실로 사용되다 2020년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윤석은 외부 관찰자의 시점에서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건축가의 관점에서 건물의 구조와 기능을 추측하고 파악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상은 건물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건축적 상상을 그래픽을 적절히 사용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창작자가 비(非)영상전공자면서 건축가이기 때문에 영상은 건축가 특유의 구조와 관계성을 파악하는 사유가 드러나면서도 특정한 영상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작자의 독특한 감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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