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론Ⅰ

미술에 있어서 소묘는 색채보다 요긴한 부분이다. 색채는 소묘에 의하지 않고는 미술적으로 살려지지 않지만, 소묘는 반드시 색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미술의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

박명인의 미학산책 소묘론 : 이미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박명인의 미학산책 소묘론 : 이미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그렇기 때문에 미술의 정수는 소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미술에 있어서는 ‘형’이 골자가 되는 것이다. 형은 물론 모든 색이 없어지면 형도 없다. 적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형에 있어서 최후까지 필요한 색은 두 가지 색만 있으면 좋다. 한 색은 ‘바탕’을 만드는 색이고 또 하나는 형을 단락 짓는 선을 위한 색이다. 그것은 한 색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색’ 또는 한가지 색은 색채라고 할 수 없다. 

색채라면 사물의 표현 태도 등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성질이니 경향 또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색은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색일 뿐이다. 그것은 형을 보기 위해서 또는 형을 생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색으로써 형에 속하는 것이다. 색채란 색채에 의해 일어나는 감명이라고 하기에는 이 두 가지 색은 색채로서 사람에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형으로서 사람에게 상대하기 위한 의미 밖에 지탱하지 못한다. 그러한 색은 소묘 또는 형에 포함되어야 하며, 색채는 이 두 가지 색 위에 처음으로 그 영토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한 영토를 미술에 있어서의 색채적 요소라고 한다.

   그러므로 형에는 색이 겹칠 수 있지만, 형의 근본은 선에 있다. 일체의 색채적 요소를 제외해도 형은 엄존(嚴存)한다. 색이 있어도 없어도 형의 대신은 없다. 거기에 선이 남아 있다면 형의 골자는 선이 된다.

   미술은 예술이기 때문에 형의 골자인 선은 미술의 골자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색채도 형에 포함되어 있어서 선만을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미술에는 또 달리 색채에 의해 발휘되어야할 미의 내용도 있는 것이다. 결국 색채는 미술에 있어서 첫째가 아니다. 아무리 색채적 매혹이 넘치는 작품이어도 만약 그것이 뛰어난 작품이면 반드시 보다 깊은 매력있는 소묘가 존재할 것이다. 색채의 매력은 물론 심대(甚大)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결국 미술이 될 수 없다. 형을 생각하지 않고도 색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미술과 관계없는 것이다. 형이 없는 색에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술에 있어서의 미는 없다. 미술에 있어서 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각을 통해서 느끼는 정신적 열락(悅樂) 으로 무한이라든가, 풍부한 아름다움이라든가, 평화라든가, 신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명은 색채만으로는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색채에는 서로 하나 또는 몇인가의 느낌을 암시하는 소질(素質)은 있지만, 그러한 요소도 소묘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 한 색채로서의 미에까지 도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묘는 그것만으로 이미 그러한 미에 이를 수 있다. 색채는 그 소묘 내용의 성질에 따라서 선택되어 그 소질로 소묘를 도와 미를 살리게 된다. 그러나 색채는 미술에 있어서도 없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다. 첫째가 아니라고 해서 멸시해서는 안 된다. 미술은 각기 다른 여러가지 마음가짐(내면의 미의 그 때 그 때의 특질)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미는 소묘만으로는 살려 낼 수 없고 미는 색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소묘가 미술의 골자라고는 해도 미술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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