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사실론 Ⅵ

   부분과 전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영역은 그 전체라는 느낌보다 더욱 깊은 것이다. 전체의 느낌이란 아무리 깊더라도 물체의 미는 나오지 않는다. 물체의 무형적 감명이라는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가장 깊은 영역은 물체의 미가 아니다. 그림의 원인을 일으키는 물체를 초월한 무한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동이다. 완전히 마음으로 마음을 보는 심미영역이다. 물상의 미감의 경우에는 마음으로 형을 보는 것이다. 이 영역에서도 물론 마음이 없으면 볼 수 없다. 육안으로 형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 미는 몇 번 반복하지만 역시 영원한 무형이다. 그러나 마음을 갖고 마음을 보는 영역은 더욱 깊다. 이 영역에까지 이르면 사실은 그 유물적인 냄새로부터 완전히 구제된다.

   이 영역을 미술에 있어서의 유심적인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 영역은 사실에도 상상(장식)에도 또 깊은 요소가 있다. 마음을 갖고 마음을 보고, 마음을 갖고 마음을 그려 내는 영역이다. 옛날부터 사의(寫意)라는 말이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대단히 개념적이어서, 누구나 통속적으로 가볍게 말하게 되지만 본래의 의미는 확실히 유심적인 영역이다.

[박명인의 미학산책] 사실론 Ⅵ
[박명인의 미학산책] 사실론 Ⅵ

 

   다시 말해, 이 영역에 있어서 작가는 붓 끝에 마음을 담아 묘사하고(화가이기 때문에 붓으로 쓴다. 따라서 다른 조형미술의 경우는 붓을 손가락 또는 끌 등이라고 번역해서 생각되고), 화가의 마음은 이 때 형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단지 그 형에 감도는 깊은 느낌만은 언급할 수 있다. 완전히 무형과의 대처(對處)이다. 사실적 미만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무형과 대처하면서 화가의 마음은 형에 접촉하여 형의 선과 색에 입각한 미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형을 좋게 보는 것 보다 깊이 탐구하는 것이 더욱 좋다. 그러나 유심적 영역에 있어서는 이미 형의 미라고 할 수가 없다. 초상화에 있어서의 얼굴, 특히 눈은 그 영역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풍경ㆍ정물 등에 있어서의 무한감 등도 물론 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신비로운 것이 묘하게도 좋지 않은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신비적인 어려움도 아니다. 화가가 마음을 갖고 그린다는 것은 어떻게 그리기를 원하는가 수공에 따르지 않으면 마음만으로는 화면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형이 없는 느낌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풍으로 수공에 의해 되는가, 또는 과연 수공이 그것을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을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완전히 이 유심적 영역을 모르는 유물질적(唯物質的) 자연주의자들은 이러한 영역은 환멸 이전에 옛날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을 그려도 그것이 사람이 아니고, 빛과 음과 양과 질인 것이 가장 화가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물질로 그리는 것은 미술로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으로 그리는 것이 미술로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이같은 유심적 영역의 표현은 화면과 그려야 할 대상에서 유심적 느낌을 비교해 보고, 심판하면서 화면에 그 느낌이 유착할 때까지 심사숙고해서 묘사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묘사하는 것은 이미 형(색을 포함)으로 바뀌는 것이다. 묘사한 것에 나타나는 것은 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붓은 결코 물체의 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유심적 영역이 가장 화합해 있거나 아니면 가장 움직이거나 대신하거나 할 수 없는 유일한 형을 마음 깊이 하면서 유심적 영역을 응시하는 것에 의해 찾아지는 것이다.

   물론 이 유심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실적 미를 추구할 때도, 작품과 대상과의 미의 비교가 없으면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수법이라는 것은 원래 미일지라도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면의 미와 일치해야 미와 적합하게 조합되는 것이다. 수법을 갖고 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우연에 의해 나타난 미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것이 미술이다. 단지 그 수법의 우연성을 필연으로 바꾸는 힘은 ‘내면의 미’의 심판이다. 이 내면의 미에 의해 선택된 우연이 미의 법칙이며, 미술적 요소의 미는 우연하지 않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