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관 사진의 탁월한 회화적 풍경
김종근 미술평론가
윤제관 사진작가는 자연의 풍경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흔치 않은 회화적인 작가이다.
무엇보다 그의 앵글에 집중적인 오브제는 다랭이 논의 풍경이다.
흔히 ‘다랭이’는 옛날부터 작은 규모의 논밭을 부르던 말로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을 일컫는다.
그 광경은 마치 수 없는 계단을 연상케 하듯 조그만 논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이색적인 풍경으로 멋진 대상이다.
그리하여 많은 화가 중 옥전 강지주가 화폭에 담고, 시인 오세영이 이 다랭이논의 인상을 시로 노래하고 있을 정도이다. 시인 조성식의 “다랭이논” 이 그 대표적이다.
어머니는 이마에/다랭이논 대여섯 마지기나/"
버시고 계셨다/나는 그 다랭이논에서/보리며 벼를 먹고 컸다...”
보리와 벼가 자랄 수 없는/버려진 잡초들로 가득했으리
삶에 파이고 세월에 깎이면서/다랭이논이
산비탈에 만들었을 터....
이렇게 우리의 삶에 한 부분이었던 논두렁의 풍경은 가장 멋드러진 장소로는 화성, 군포를 비롯하여 전남 여수와 광양을 잇는 이순신 대교가 생기면서 묘도에 '다랭이논'등이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묘읍마을 들녘은 가을 추수를 맞아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촬영을 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윤제관 작가도 그런 풍경에 한 선수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 다랭이 논을 찍었을 것이다.
특히 모내기가 시작되는 봄철에는 일출과 푸른 하늘이 논의 수면에 비치면서 그 황홀한 장면은 최고의 볼거리로, 들녘이 노랗게 물든 가을에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제관의 시선은 이 탁월한 조형적인 구성과 요소에 흠뻑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도 집요하게 화가처럼 말이다.
그 경관이 너무나 볼만하여 경남 남해군은 다랭이마을 다랑이논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윤제관의 작품 사진은 바로 농부들이 생업을 위해 만들어 놓은 농사의 멋진 경이로움과 그 속에 내포된 삶의 여정과 흔적에 남다르게 주목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치는 중국 광시(廣西) 류저우(柳州)시 싼장(三江) 동족(侗族)자치현의 다랑논에서도 층층이 이어진 금빛 다랭이논과 민가가 어우러져 절경의 경치가 존재하고 있다.
특별히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부분은 윤제관의 사진은 기본적으로는 컬러지만, 마치 흑백 사진이나 모노톤의 회화처럼 강렬한 대비와 색채감각 그리고 조화로움이 멋들어지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인간의 생태적인 아름다움과 그 속에 숨겨진 삶의 손길들을 한 폭의 유화작품 이상으로 예술적이고 회화적이다.
자연 속 풍경의 섬세한 순간들을 포착해 회화적인 붓 터치로 조율하고 전이시킨 기교에서 그는 화가가 될 사람이 사진작가가 된 것이 틀림없다.
윤제관의 사진은 이렇게 감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존재론적인 철학적 감정을 포함한다. 특히 자연 일부분을 크게 클로즈업하거나 장대한 풍경을 압도적으로 효과 처리 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신비스러움과 경외감을 풍긴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풍광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침묵처럼 조용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그 안에서 발견되는 거치른 터치는 감상자의 시선을 작품 속에 머무르게 한다.
종종 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그의 시선과 앵글을 거치면서 그는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들을 평화롭고 푸근한 추억과 향수에 밀어 넣는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상상하는 것이고 내가 그려내는 것은 결국 나를 그린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사진은 시간을 기록하는 다큐적 성격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회화적 성격이 강하다. 나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환경으로부터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스를 찾아 나서지만, 그것은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Raw Material 이다.”라고 고백이 그래서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화가들이 보편적 농민의 모습을 소박하게 그려낸 박수근처럼, 그들의 힘든 삶을 이해하고 스케치하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들을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윤제관에게도 현장이란 이렇게 중요한 공간적 특성이다. 그 앵글의 각도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부감법으로, 마치 새가 카메라를 들고 하늘에서 찍은 것처럼 그 풍경 속에서 직선의 조형보다는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의 부드러움을 발견하고 포착한 것은 멋들어진 행위가 명백하다.
작가는 그런 직선을 무시하면서 곡선은 자연이 주는 가장 원시적 형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행위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미로와 안개 속에서 숙명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다랭이 논에서 발견한 것은 작가로서는 가장 큰 기쁨이자 희열일 것이다.
다랭이논에서 “숙명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원주민을 나로 대입시켜 표현”하고자 했다고 털어놓은 고백이 그래서 보는 이의 가슴에 다가온다.
동시대인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화폭에 옮길 수 있는 그것이 사진작가의 눈이고 그 눈은 곧 화가의 깊이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제삼자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둔다. 그렇다고 주목을 받기 위해 돌출적이거나 자극적인 것은 지양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회화적인 메시지를 제시할 뿐이다.”라는 발언에서 우리는 그의 예술적 욕망을 확인한다. 그의 작품 사진에는 단연 강렬하고 중성적인 색채의 조화로움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한 시대의 풍경을 그런 환상적인 조형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놓으려는 욕망이고 모든 예술가의 욕망이다. 윤제관은 바로 그런 예술가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