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사실론Ⅰ

박명인의 미학산책 사실론Ⅰ
박명인의 미학산책 사실론Ⅰ

미술에있어서  사실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거론하고 있지만 대개는 하나같이 오류에 빠지는 것 같다. 쿠르베의 사실에 관한 생각이나 그 작품에서도 조금도 ‘예술로서의 사실’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자연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자연을 우상화해서 개념적으로 자연은 무엇이든지 위대하다는 생각은 실수이다. 

많은 사실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실수에 끌려든다. 전능적인 생각으로 모든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충실하게 복사하면 미도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연은 인간 이상의 힘이 있어서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에, 그것을 섬세하게 묘사하면 심각한 것이 된다. 인간에 있어서 움직이기 어려운 진실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특히 근대 자연주의 전후의 사람들에게서 많았으며 자연의 외형적인 것이 사실주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도, 인생에 있어서도, ‘진짜’는 위조가 없는 사실이 틀림없다. 그것도 진짜일지는 모르지만 이미 하나 이상의 진짜인 것이 있다. ‘사실’이기 때문에 모두 진짜라는 것은 재판소의 고백과 같은 것이어서 거짓에 대해서만 진짜라는 것에 불과하다. 인생이나 예술에는 사실 이상이 있다. 인생의 목적에 있어서 진짜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사실과 진실의 차이다. 

사실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사람이 하품(yawn)을 해도 그것은 잠이 오려고 할 때나 무료할 때의 무의식적인 동작으로써 사실의 하나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게 무작정은 아니다. 모든 사실에도 숨겨져 있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진실은 진실한 사람의 마음에 은밀히 숨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톨스토이가 사형수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한 것은 마음속에서 눈 앞의 사실로부터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을 본 것이며,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많은 구경꾼은 단지 목이 떨어지는 사실만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 있어서도 예술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이 진실이다. 미술에 있어서의 자연은 이 사실에 상당한다. 그리고 진실은 아름다움이다. 미술에 있어서 가장 진실한 것이야말로 ‘미’밖에 없다. 미란 형상의 ‘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미술가가 미를 본 기분은 변할 수 없다. 절대를 본 기분이기 때문이다.

이 ‘진’을 자연 외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원래 자연은 미도 추도 아무 것도 아니다. 자연일 뿐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지 사람의 마음은 거기에서 미를 찾아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도 자연의 하나이다. 그러나 자연이야말로 사실을 살려 내는 그 이상의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사실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것에 멈추면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의 마음이 없고, 내면의 미의 영역이 없어서 인간의 정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한 모든 형은 시종일관 마음이 없는 수공일 뿐이다. 이것은 예술을 육체적 또는 물질적인 데까지 타락시키는 것이며, 예술이 인간의 마음에 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사실은 예술이 틀림없다. 그러나 세간에 사실이라는 말의 의미는 대체로 이 영역을 초월하지 못한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