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 뉴미디어 소장품을 소개하는 «MMCA 뉴미디어 소장품전-아더랜드»를 9월 10일부터 2025년 3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하고 있다.
'MMCA 뉴미디어 소장품전-아더랜드'는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뉴미디어 작가들인 더그 에이트킨, 에이샤-리사 아틸라, 제니퍼 스타인캠프 3인의 대표작 3점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에 대해 다루며, 익숙한 공간들을 보여주면서도 또 다른 세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해저에 설치된 파빌리온 조각을 통해 바닷속 풍경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고, 가문비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의 바람과 빛의 변화를 포착하며, 꽃과 과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가상의 풍경을 펼쳐놓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의 중요성, 정물과 가상과 여성의 공간을 다루며, 세 작가의 작업이 환기하는 ‘다양한 공간의 의미’를 부각하고자 했다.
이 밖에도 전시 제목인 아더랜드는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세계’를 뜻하는데, 세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다층적인 공간을 뜻한다. 아울러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최근 5년간 ‘(사)현대미술관회’ 및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의 기증을 통해 소장하게 된 작품들이다. 기증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 그 안에 펼쳐진 아더랜드로 향하는 문을 열어보자.
더그 에이트킨(1968~)은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미국 출신의 뉴미디어 작가이다. 영상 및 설치 작업 이외에도 사진, 조각, 건축,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전방위적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업의 주요 키워드는 풍경으로, 그의 작품에는 도시 풍경이나 자연 풍경과 같은 다양한 풍경이 등장한다. ‹수중 파빌리온›(2017)은 미국 캘리포니아 카탈리나 섬의 해저에 세 개의 파빌리온을 설치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영상 속 파빌리온은 매끄러운 거울과 바위처럼 거친 재질의 표면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형태의 조각 작품이다. 작가는 그 주변을 오가는 해양 생물과 사람들, 그리고 날씨의 변화 등 파빌리온 조각을 둘러싼 바닷속 풍경을 계속해서 변모시킨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해양 환경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 우리를 둘러싼 환경 문제로까지 주제를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예술과 비예술 분야의 접점을 탐색하며 미술의 의미를 확장해 온 에이트킨의 대표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후 공개된 적이 없어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에이샤-리사 아틸라(1959~)는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영상 작업 이외에도 영상 설치, 드로잉, 사진, 조각 등 다매체를 이용한 전방위적 작업을 제작해 온 핀란드 출신의 작가이다. 초기작에서는 인간의 지각이나 감정, 관계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으나, 2000년대 중엽부터는 인간을 넘어 동물과 자연으로까지 관심의 대상을 확장했다. 작가가 ‘나무의 초상’으로 지칭한 ‹수평-바카수오라›(2011)의 주인공은 가문비나무이다. 거대한 나무는 주변의 바람 소리, 흘러가는 구름, 빛의 변화와 함께하며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화면의 좌측 나무의 밑동 근처에 서 있는 사람은 자연의 압도적인 크기에 비해 극히 작고 미약한 존재로 보인다. 두 대상의 극명한 크기 대비는 인간을 중심으로 자연을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을 탈피해 자연을 통해 주변 세계를 다시 살피게 한다. 이 작품에서 수평의 의미가 강조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인류가 지구 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키며 지질 시대마저 인간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인류세’ 논의가 2000년대 이후 확산되어 왔다. 아틸라 역시 인류세 시대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와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인간과 구분되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다른 시공간 혹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다른 세계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제니퍼 스타인캠프(1958~)는 미국 출신의 뉴미디어 작가이다.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활용해 꽃, 과일, 나무 같은 자연 대상물이 화면 속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정물 3›(2019)에서 꽃과 과일은 평면적인 캔버스를 벗어나 마치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참조했다. 이 그림들은 표면적으로는 정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생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상징하는 바니타스의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작가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바니타스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정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에 집중한다. 스타인캠프가 ‹정물 3›에서 되살리고자 한 또 다른 요소는 여성의 공간이다. 작가는 17세기 정물화 중에서도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참조했다. 정물화에는 주로 열매를 맺는 식물, 즉 암꽃이 등장하지만, 그 의미가 간과되어 왔다는 점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처럼 스타인캠프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실제와 가상의 공간 등 복합적인 시공간이 뒤얽히며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초대형 뉴미디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특별한 공간을 조성했다. 에이트킨의 ‹수중 파빌리온› 상영을 위해 원형 전시실 안에 거대한 박스 형태의 전시실을 설치, 공간을 이중으로 구성하고 입체 사운드와 미디어를 통해 관람객이 실제 바다 속에서 풍경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아틸라의 ‹수평-바카수오라› 전시실에서는 거대한 가문비나무를 13미터의 대형 스크린에 투사하여 관람객이 작품 속 흔들리는 가문비나무, 그림자의 변화 등 시각적·촉각적 자극을 경험하게 했다. 스타인캠프의 ‹정물 3›은 8미터 대형 스크린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꽃과 과일을 투사하여 관람객이 앉아 있는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자연이 서로 뒤얽히는 독특한 공간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화면 속의 꽃과 나무, 바다와 숲에 집중하면서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듯 명상적인 분위기에서 작품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국립현대미술관 뉴미디어 소장품의 국제적인 스펙트럼을 확인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아더랜드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