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고대 슬라브의 주요한 축제 가운데에는 '이반 쿠팔라'(Иван Купала)라는 축일이 있다고 한다. '이반의 낮'과 '쿠팔라의 밤'으로도 알려진 이 축제의 날은 7월 7일인데 주요 행사나 의식은 7월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전날에 행해진다고 한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여름 해를 즐기며, 물과 불로 몸과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모인다. 서로 모여서 화환을 짜고, 서로에게 물을 뿌린 뒤 모닥불을 피워 그 위를 뛰어넘고, 태양을 상징하는 바퀴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태운다고 한다.
불은 물과 함께 정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물이 맑고 깨끗한 성질과 더러움을 씻어낼 수 있는 부드러운 정화라면, 불은 오염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공격적인 특징의 정화이다.
한편 전설의 새, 피닉스는 500년 주기로 자기 몸을 불로 태워 재가 되고, 그 재에서 새로운 불사조가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죽음을 통해 재생하는 불멸과 순환의 아이콘인 것이다.
뜨거워진 적이 없다는 건
낡은 나를 짊어지고 산다는 것
낡은 생각, 낡은 감정, 낡은 습관이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질 때
마음의 척추가 굳어져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면
그때는 스스로 불타올라
잿더미 속에 웅크려
거듭나야 할 때.
-작가노트 중에서-
우리는 때때로 거듭나야 한다. 그 전에 한 번은 기존의 내가 죽어야 한다. 카타르시스( katharsis)는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반 쿠팔라’ 축제에서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의식을 치르듯이, 피닉스가 주기적으로 스스로 불타올라 거듭나듯이, 현대인들은 주기적으로 자신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너무나 많은 선택지 속에서 쌓인 갈등과 스트레스가 점점 굳어지면서 생생한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일상이 지루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며, 의미를 잃어가는 하루하루가 지속된다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인생이 남아있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자신을 불태울 것인가? 그것은 고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변화의 계기를 찾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 회피하거나 방어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고통이어야 기존의 마음의 습관을 불태울 수 있다. 그것이 곧,' 시련이 축복'이라는 것의 의미이다. 기존의 내가 죽으려면 고통 없이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낡은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고통에 직면하며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용기는 자신이 지켜내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삶을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지켜내야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곧 축복인 것이다.
백지상 프로필
서양화가. 상담심리학 박사. 미국 오이코스 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회장.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