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 비인간들을 위한 비가(悲歌)-작가 슈뮤 <오지 않을 내일>展 전시서문
박겸숙(미학박사, 미술비평)

슈무 작가의 시선은 항상 동물들의 몸짓, 표정, 눈망울로 향한다. 작가는 나무의 속살이 주는 따스한 느낌으로 동물들의 포근한 털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판에 위에 검은 안료를 올려 말린 후에 그 표면을 한 올씩 파내는 판화기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리같이 반짝이는 그들의 검은 눈동자를 완성한다. 많은 시간 집중하여 조각칼로 새겨 완성하는 섬세하기 그지없는 작업방식은 작가가 그려낸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기분 좋은 미적 쾌감이 느껴진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주제와 형식, 색조와 기법이 주는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작품은 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어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동물을 소재로 그리는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서 우리가 이 작가의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슈무 작가에게는 ‘지금 여기’에 자신이 그려낸 이미지, 그 ‘너머’를 향하는 시선이 있다. 그 시선은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의 능력에서 발원한 것으로, 언젠가 죽음을 맞을 모든 존재들을 향한 아스라한 슬픔을 담고 있다. 작가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가지고 있는 그 본연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익이니 자본이니 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 너머에 있는, 모든 생명을 가진 이들의 눈을 마주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그 작은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

이번 전시 <오지 않을 내일>에서 작가는 그간 마음 깊은 곳에 항상 품어 왔던 동물들-그들은 인간중심적인 일상의 무심한 폭압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이들이다-을 다시 우리 앞에 소환한다. 작가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죽이고, 실험하고, 철창에 가두어 평생을 ‘볼거리’로 살아가게 하는 것조차도, 그저 어쩔 수 없다고,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고 마는 비인간들, ‘동물들’을 재현한다. 본래 우리와 동등한 생명을 갖고 태어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갈 뿐인 동물은 언제부턴가 인간에게 사육되는 가축이 되었고, 축산의 생산품이 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마치 감정이 없는 존재인 양 착취하며, 오로지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또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언제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무참히 짓밟았다. 우리는 절멸되는 동물들, 아니 인간 외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너무 가혹하고 무심하다.

슈무 작가의 시선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그들-동물을 사물이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감정을 지니고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로, 제인 구달이 제안한 것처럼 동물들을 ‘그것’, ‘어떤 것’이 아니라 ‘그’, ‘그녀’, ‘그들’로 부르면 어떨까-의 고통스런 현실로 향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눈감을 것인지, 작가는 묻는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생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동물들을 해방시켜줄 수는 없는가?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슈무 작가의 작품 속 많은 동물들 역시, 우리를 바라본다. 작고 반짝이는 그들의 눈이 정말 감정이 없는 기계나 돌 같은 무생물처럼 보이는가? 연구자들은 동물들 아니 식물들까지도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오고 있다.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동물도 공포, 연민, 그리움, 슬픔, 기쁨뿐 아니라 유머, 창피함, 우쭐댐, 우울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의 뇌에는 인간들이 사랑할 때 나오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똑같이 분비된다. 그들도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한다. 그것을 눈빛, 표정, 귀, 꼬리, 자세, 걸음걸이, 소리, 체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를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이렇게 함께 감정을 나누는 그들이 평안한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제안하려는 작가의 손끝에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제 슈무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자연 속에서 조차도 항상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동물들을 위해서 리본을 쥐어주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평온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를 소망했던 작가는 조금 더 용기를 낸다. 작가는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고통과 착취로부터 해방된 온전한 그들의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다. 동물이 감정 없는 사물도, 인간을 위한 재료도, 볼거리도 아닌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동물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태도라고.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향한 폭력, 혐오, 외면 그리고 그들의 절멸의 순간마저 개의치 않는 잔혹한 태도는 결국 언젠가 인간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슈무 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 그 모든 개체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권한다. ‘내일이 없는’ 비인간들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한탄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이제 우리가 작은 것부터 다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작품 속 동물들의 눈을 가려주었던 작은 리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모든 동물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작가는 꿈꾼다. <오지 않을 내일>을 맞을 많은 이들-동물, 식물, 바다생물, 그리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에게 ‘내일’을 맞이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이번 전시에서 만날 슈무 작가의 작품 속 그들의 살아갈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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