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애 작품전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초현실이 공존하는 조형공간’
신항섭(미술평론가)
인간의 삶이란 시간과의 투쟁이다. 정해진 시간표에 의해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태양을 주기적으로 공전하는 지구가 한바퀴 도는 24시간이 하루이고, 지구를 주기적으로 공전하는 달의 시간에 따라 한 달이라는 시간표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시간표는 인간 삶 전반을 지배한다. 인간 삶은 시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하는 일이 없다. 시간의 흐름과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걸 당연시할 따름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는 게 세상사이고 인간 삶이다.
조현애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 또는 시간성에 대한 조형적인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란 분,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과 같은 시간 단위를 인식하는 데 있다. 이는 또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성, 즉 실존에 관한 물음이자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시간과 연동한다. 모든 삶의 현상이 시간성 위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시간성의 문제를 회화적인 이미지로 풀어내려는 게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여기에서 그는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계 또는 그와 관련한 이미지를 그림의 축으로 설정한다. 시계는 태엽을 감아줌으로써 작동한다. 인간이 밥을 먹음으로써 존재할 수 있듯이 시계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면서 규칙성, 정확성으로 시간의 흐름을 시시각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기능을 지닌 시계가 만들어짐으로써 인간 삶은 규칙적인 행동양식을 갖게 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거대한 인류문명의 탑은 시계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나 시간성을 상징하는 시계의 직접적인 제시가 단순한 소재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읽는 데서부터 시간을 재거나 시간을 단위별로 묶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계 본연의 기능이 완성된 이후 그 쓰임새에 따라 모양새를 다양하게 디자인하게 된다. 시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은 물론이려니와 클래식 시계의 디자인은 아름답기에 그지없다. 단순한 기능성 이외에 장식성을 중시하는 세련된 디자인을 추가함으로써 놀랄 만큼 아름다운 모양새의 시계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처럼 아름답게 디자인된 시계를 화면에 불러들인다.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시계는 작품에 따라서 중심적인 소재, 즉 주제이기도 하고, 부제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시간을 상징하는 소재로서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전적인 회중시계와 탁상시계 는 물론이려니와 기계적인 정밀함과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자극하는 무브먼트도 있다. 어느 종류이든 시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형태미만으로도 시각적인 즐거움을 유발한다.
더구나 세련된 사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진 시계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안정적이고 정확한 사실 묘사는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이자 설득력이다. 화가로서의 윤리성이기도 한 묘사력에 대한 신뢰야말로 그림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견고한 사실 묘사로 재현되는 시계의 존재감만으로도 조형미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과 시간성을 상징하는 시계의 이미지를 실제처럼 제시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신뢰감이 커지게 된다.
그의 작업에서 시계와는 전혀 다른 소재인 자연풍경, 특히 바다 풍경을 도입한다. 작품에 따라서는 풍경이 주제이고 시계는 부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시계와 풍경이라는 상호 연결성이 없을성싶은 이미지로 구성하는 건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시계는 대체로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그 오래된 시계는 지나간 시간을 상정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풍경 속의 파도 이미지는 시간의 무상함을 실증한다. 힘차게 밀려왔다고 사그라드는 파도의 존재 방식에는 시간이 개입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시계와 풍경의 조합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간이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바다는 현실이고 시계는 과거이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제가 함께 한다는 건 이 둘 사이에는 오랜 시간의 갭이 존재한다는 걸 말한다. 시계와 바다 풍경은 공존할 수 없는 이질적인 관계이다. 더구나 시계가 존재하는 방식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다시 말해 바다 풍경을 배경에 두고 시계는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상태이다. 이를 통해 시간적인 차이를 표현한다. 사실적인 공간에 비현실적인 존재 방식의 시계가 공존하는 건 초월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 방식은 중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시각적인 충격이다.
그의 근래 작업 가운데 꽃잎을 소재로 하는 작업이 있다. 꽃잎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시간성을 말한다. 비현실적으로 확대된 꽃잎 하나가 화면 중심에 놓이고 배경에는 추상적인 이미지 또는 전통적인 수묵산수화의 이미지가 실루엣처럼 존재한다. 이 또한 꽃잎이라는 현실적인 주제와 과거에 제작된 수묵산수화를 대비시킴으로써 시공간의 통합을 통한 비실제적이고 초현실적인 상황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꽃잎은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함축하는 ‘화양연화’를 떠올린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양의 꽃잎 한 장은 여러 가지 함축적인 내용을 상징한다.
절정에 도달한 꽃잎은 완전한 것, 온전한 것 따라서 무결점한 존재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 꽃잎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금세 시들고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존재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무상한 존재인 셈이다. 배경의 수묵산수 이미지가 과거의 시간을 의미하듯 꽃잎도 결과적으로 어느 시점에서는 과거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약속이다.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일까. 꽃잎을 비현실적으로 크게 묘사하여 화양연화의 시간을 박제한다. 이는 한마디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이미지를 영속화하기 위한 일이다.
시계와 꽃이 중심이 되지만 작품마다 등장하는 작은 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가 된다. 한 명 또는 여럿이서 타고 있는 작은 배는 시간의 여행을 은유한다. 산수화 속의 작은 배일 수도 있고, 현실의 돛배일 수도 있다. 그 작은 배는 수상 스키를 이끌기도 하고, 달을 향해 나아가기도 한다. 이처럼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설정은 그림의 공간, 즉 조형 세계로 가는 데는 장애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의 풍부한 조형적인 상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윈드서핑을 한다. 꽃잎 줄기 쪽에 작은 시계를 주렁주렁 매달기도 하는가 하면 난데없이 건널목을 힘차게 걷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인 소재의 배치를 통해 상상의 공간을 무한히 확장한다.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조합을 보면서 의식 및 감정의 해방을 느끼는 것이다.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소재 및 이미지를 조합하여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으로 만드는 그의 조형공간은 시간을 매개로 한다. 시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나, 예술은 무한하다. 그의 작업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혼동케 한다. 이 또한 그의 작품에 담긴 숨겨진 의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