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작가_ 'Dress Code'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권주희(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조각이란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공간으로 타인을 끌어들이는 ‘어떤 것’이다. 여기서 공간은 무한한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현실의 공간을 지칭한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세계관과 인생관을 손으로 빚어내 표출하고 우리는 이를 매개로 새로운 경험을 마주한다. 이것은 어떠한 방향 제시일 수도 있고 그에 대한 작가의 반응일 수도 있다.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김선일 작가는 다년간 신체 형상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표상해왔다. 미술사에서 신체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그 폭도 매우 광범위하다. 신체 안에는 세대와 장소에 따라 다채로운 문화의 흔적이 간직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의 신체는 사회의 관계 속에서 변하는 ‘환경적 신체’로서 ‘생물학적 신체’를 넘어서는 감각과 인상이 부딪히며 발화한다. 정지된 몸이 유연한 몸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 또한 확장되었다. 또한, 몸은 집단 안과 밖, 집단 사이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사회적 코드화에 맞춰 빚어진다. 이는 자신을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김선일의 작업은 작가 자신, 그를 둘러싼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기반해야 타인의 삶도 공감할 수 있다는 듯, 작업의 시작은 자화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아버지와 주변인의 이야기를 녹여낸 형태로, 특히 시대상에 부합한 남성의 존재와 의미, 가장(家長)으로서 바라보는 사회와 관계로 확장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삶의 여정과 그 안에 깃든 진솔함이 묻어난다.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인간은 인생에서 부모의 역할과 자식의 도리를 동시에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어느 시기를 맞이하게 되면, 가족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애 주기에 따라 맺거나 소멸된 수많은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본다. 작가는 어부인 아버지의 고된 노동을 지켜보며 시대가 추구했던 부모의 정체성을 들여다본다. 또한 이제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미래에 자신의 자리에 서게 될 자식들도 바라본다. 작가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각 세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요구됨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회 문화적인 관계로 확장해 나간다.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작가가 3년 만에 마련한 개인전 <드레스 코드(Dress code)>는 다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면서도 현대사회의 일면을 묘사한다. 가볍고 유희적이지만 한편으론 묵직하고 진지한 사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의 폭을 제시하며 사회과 관계, 존재의 복잡성을 유기적으로 상기시킨다. 꽃봉오리로 형상화된 이미지는 개인이 진정한 실체를 숨기고 포장하려는 현대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수많은 온·오프라인 시스템 안에 존재하며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작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라 노동의 의미가 다른 형태로 전이되고 있음을 다종다양의 군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재료가 지닌 특성과 질감, 양감과 균형감의 표현에 치중했던 과거와는 달리 신작에서는 다양한 색감을 입혀내며 단일한 색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의 특성을 시각화한다. 비슷한 크기와 형태는 사회상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김선일의 작업은 인간의 본성, 세대, 경험, 그리고 삶의 원동력 등을 재합성함으로써 현대의 사회상과 삶을 표상한다.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몸은 언어와 함께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주요한 매체로, 모든 사회 속에서 교육과 코드화를 따르게 된다. 즉, 몸은 타인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길들이고 익히는 과정을 이행하는 것이다. 세대가 변화함에 따라 이러한 교육과 코드화도 변화하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매개하는 몸도 결을 함께한다. 김선일 작가는 인간의 신체만이 아니라 자연의 신체도 일직선상에 둔다. 앞선 작업에서도 꾸준히 돌, 말, 두꺼비, 소 등의 자연물을 도입해 관계의 의미를 상징화했듯이, 신작에서는 꽃봉오리를 비롯한 피어나는 꽃 형상과 인간의 몸을 접목해 코드화했다.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신체를 통한 관계의 코드화, 확장된 사회상으로서의 조각-김선일 작가_평론

우리는 자연과 가까워지고자 할 때, 사유하고자 할 때, 흔히 숲을 찾아 거니는 것처럼 김선일의 조각과 조각 사이를 거닐며 그가 제시한 사회와 관계의 코드를 탐색해 볼 수 있다. 작가가 다양한 신체를 통해 삶과 정체성을 탐구하듯, 전시에서는 ‘김선일’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과 관계에 대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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