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미적 범주론 Ⅴ

  이 논의는 필연적으로 미와 언어와 관계된다. 미적 개념을 표현하는 어휘를 미적용어(aesthetic terms)라고 말한다. 모두에서 거론한 미적용어의 리스트를 보아도 미나 우미와 같은 고유의 미적용어와 함께 은유적인 용어를 찾아냈다.〈시블리는 은유의 사용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다. Sf. Sibley, Aesthetic Concepts, pp. 78-79.〉

[박명인 미학산책] 미적 범주론 Ⅴ
[박명인 미학산책] 미적 범주론 Ⅴ

 

   고유의 미적 용어는 오히려 소수로써 심리나 행위에 관한 넓은 의미에서의 도덕적 용어를 전용(轉用)한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리스트업되고 있다는 것은 은유적인 용어도 생각을 짜낸 은유가 아니라 어휘화된 죽은 은유인 것을 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아(elegant)는 도덕적인 의미와 미적인 의미의 어느 것이 본의(本義)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에 부딪치면 이 애매함은 현저하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소수의 고유의 미적 개념을 제외하고 모든 용어에 대한 문제이다. 이 애매함을 문제로 제기한 헨리 구히에(Henri Gouhier)에 의한 ‘연극범주’의 주장이 있다. 앞에서 소개한 졸거(Karl Wiheim Ferdinans Solger)의 경우를 전형으로 고전적인 미적 범주론은 반드시 ‘비극적·희극적’의 대개념(對槪念)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구히에에 의하면 미적 범주가 아니라 극적 범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미적 범주란 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극적 범주는 행동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Henri Gouhier 『연극의 본질』제10장, 특히 194쪽 참조. 또한 『연극과 존재』는 이 연극범주에 대한 구체적인 논술이다.〉

   극적 범주라는 것을 설정하는 것에는 의의가 있다고 해도 미적 질의 리스트에서 극적인 질을 삭제한다면 도덕적인 질을 삭제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 결과는 미적인 현상을 현저하게 빈곤화 한다. 뒤에 남는 것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것만 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통일인 것처럼’말하는 특징은 항상 미적인 질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이론에 있어서의 3통일의 규칙에 있어서 완전히 개념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경험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비극적인 것’이나 모든 도덕적인 질도 관상(觀想)의 대상이 될 때 미적 질이 되어,〈‘미적인 것’의 규정에 관한 하나의 이설(異說)을 소개하자면 다케우치 도시오(竹內敏雄)는 미적인 것을 ‘감각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가치’라고 규정한다.〉그것들의 질의 충실이 궁극의 미적 가치인 미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경험 안에서는 항상 새로운 독특한 미적 질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미적 질의 레퍼토리가 열리고 있는 까닭이다. 이것은 미적 현상의 창조성, 즉 예술가의 창조성과 동시에 감상자의 창조성에 기초를 둔다는 사실이다. 경험된 유니크한 미적 질을 말로 표현하는 데도 어떤 창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모챠르트 음악의 ‘질주하는 슬픔’이다. 오히려 죽음의 은유를 포함하고 많은 단어를 미적 용어로 리스트업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리스트업된 개념은 이른바 공인된 사용빈도의 높은 용어이며, 미적 경험의 표준적인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진부하게 기울어진다. 그리고 미적 질이 깊이 경험되었을 경우에는 공인된 리스트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 두 번째로는 리스트 업된 용어 가운데에서 많은 것을 점유하고 있는 죽은 은유의 경위에 주목하면 넓은 의미에서의 도덕적인 개념, 즉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 신체감각이나 행위에 관한 개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살아 있는 은유나 직유(直喩)를 생각하는 경우에도 붙어서 돌아온다. 은유는 단어의 차용이 아니다. 빌릴 수 있었던 문맥의 영향을 받고 의미에서의 융합이 일어난다. 그것은 미적 현상이 인간의 생의 국부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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