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래핑 이미지의 그 중독성과 에로티시즘 - 이호련
이호련 회화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보다 강한 중독성과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이다.
중독성이란 이 그림을 보면 다른 작품도 보고 싶고, 또 다른 그림은 어떠할까 궁금하다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로티시즘은 전혀 음란하지도 않은 그러나 자꾸 보고 싶은 볼만한 성적 욕망을 가슴에서 부터 불러일으키는 에로티시즘이다.
1909년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는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미래주의 선언문(Manifeste de Futurisme)을 발표했다. 그 선언에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미(美)로 속도의 아름다움에 의해 세계가 빛나게 된 것을 선언한다. 멋진 경주용 자동차는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답다” 라고 공표했다.
이것은 그림 속에 움직임이나 운동감을 담아내겠다는 것이며, 달리는 속도감을 작품 속에 심어 놓는 것이 매우 아름다우며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미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히 입체주의 화가들이 가졌던 어느 한 시점을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한 복수의 시점에서 움직임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호련의 작업의 본질은 한 번에 볼 수 없는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그리면서 그 움직임을 화폭에 포착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질주하고 있는 말의 다리는 4개가 아니라 20개이다“- 이 미래파의 특징에서 보이듯 이호련은 보편적인 회화의 형상성에서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형태미를 획득하려는 의지에 중심을 두고 있어 보인다.
이것은 작가가 철저하게 현대미술의 특징처럼 시각적인 현상의 표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드러내겠다는 시각의 혁신적 표명이다.
그의 많은 작품이 보편적인 회화 양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감각적으로 훨씬 흥미롭고 신선해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그의 작품은 국내보다 훨씬 주목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도 기존의 표현 양식을 넘어서는 스피디한 운동감의 이미지 표현으로 에로틱한 성적 욕망을 절묘하게 화면에 구성하기 때문이다.
같은 화면에 오버랩핑 된 감각적 이미지, 여인의 하체들.
하체들의 상호침투라고 불러도 좋을 이호련의 오버래핑 이미지 기법은 보기 드문 그만의 독창적 양식이라 불러 마땅하다.
그의 작업 방법이나 모델들의 패션 스타일 또한 너무나 진지하고 정직하다.
이호련은 실제 모델들에게 옷을 입혀 사진을 여러 장 찍어 그 이미지들을 작가의 개념에 맞게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주도면밀한 과정 후에 작품을 완성한다.
연이어 이어지는 잔상들을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연결시켜 마침내 그 관능적인 시각적 감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대체 시키는 스킬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연속적인 이미지의 기술의 근원과 테크닉을 영국의 한 사진작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에드워드 제임스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 1830-1904)의 작품이다.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도 크게 영향을 받은 작가이기도 한데, 이호련의 방법적 양식이나 패턴이 신선하지만 이태리 미래파의 쟈코모 발라(Giacomo_Balla)와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예쁜 강아지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리드미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이호련은 이들이 갖지 못한 특정한 부위를 클로즈업하여 극적인 욕망의 떨림 효과를 관능성과 에로티시즘으로 완벽하게 포장한다.
작가는 일찍이 “욕망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내부 세계에서 외부세계로 출몰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정의하며 “성적 욕망을 토대로 그려진 여성의 신체는 욕망의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소환된 대체물” 이라며 관점에 집중했다.
결국 작가는 욕망의 대상인 여성 신체의 스커트를 슬쩍 올리거나 바람으로 포장하면서 섹시함을 매혹적으로 처리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은밀하게 화폭에 묶어 놓은 것이다.
여성 몸의 신체를 에로틱한 이미지로 승화하여 최고의 회화적 가치를 지니는 예술적 의도로 전환한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작가는 그 신체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위해 세밀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부드러운 붓질로 그 하체의 섬세한 포즈들에 집중하되 리얼리티에 빠지거나 섹슈얼한 요소들은 적절하게 절제한다.
이 새로운 아름다움, 즉 속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세상이 더욱 멋있게 변했다고 확신하는 철학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미를 창조하는 이호련의 예술적 진실을 발견한다.
일관된 인체의 연속된 동작, 성적 욕망의 대상을 역동적으로 속도의 아름다움로 위장하는 그 기술은 그래서 더욱 예술적 가치를 지니며 탁월하다.
우리는 실제 그의 작품에서 확인하기 어렵지만, 작가는 실제 모델의 의상이나 피부색 이런 것들까지 아주 세심하고 정교하게 선정하여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런 작업은 상당 부분 실제 모델을 통한 사진 촬영 후 완성되는데 그러한 포즈를 포착하기 위해 완벽한 의도적인 노출과 연출된 자세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작품의 표현이나 묘사는 물론 패션에까지 실제 여성의 치마 풍경 등 디테일 모두가 세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이호련의 <오버래핑 이미지>는 그 나풀거리는 치마의 떨림과 연출하는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인간의 본능이 풋풋하게 화폭에 살아 넘친다.
최근 작가는 더욱 많은 여인의 하체들을 마치 매혹적인 여인의 다리들을 쌓아 올려 만든 무덤처럼 묘사한다.
이전의 작품들이 단일한 여인의 신체에 주목하면서 운동감을 드러냈다면 근작들은 옷이 휘날리는 바람에 의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감각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러한 변화 외에도 작가는 더욱 여인의 위치와 구성, 자세에서도 더 극적이고 다이나믹한 자세로 화면에 긴장감과 극적인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여인들의 하체 구성도 상하로 구성을 배치하는 등 파격적인 자세들로 엮어내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완벽한 자세와 구성으로 이전 작업의 단순함을 근작에서는 충실하게 벗어나 은밀하고 유혹적인 미감을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이호련의 이런 모든 작품은 여인의 하체를 마치 느린 동작처럼 한 공간 안에 일어나는 동시성을 탁월하게 보여줌으로써 한국적 미래주의 작가의 참모습을 이상적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그동안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던 세계를 마침내 회화로 구축한 미술사적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특히 그의 화폭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섹슈얼한 이미지와 욕망의 시선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묘한 떨림이나 흔들림으로 나풀거리는 여인의 자세와 연속성의 이미지가 빚어내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물론 그의 치마와 부드러운 살결이 빚어내는 하모니, 연속 촬영을 한 듯 미묘한 설레임의 흔들림은 가히 우리를 회화의 아름다운 절정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런 점에서 이호련 작가는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의 한국의 마르셀 뒤샹 혹은 한국의 자코모 발라로 불려야 한다.
글 | 김종근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