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꿈꾸는 아세움의 행복한 몽상'
김종근 미술평론가
고양이의 선천적인 행복감과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런 행복감을 힘든 현대인들에게 전해주면서 이 몽상적인 풍경으로 희망과 위로와 용기를 작가는 준다.
상상 그 “몽상(夢想)”을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한 작가는 “광적인 몽상은 정신, 곧 삶을 지배‘한다고도 했다.
그런 아세움의 사유가 초현실적인 공간의 구성과 이색적인 사막 풍경속 고양이를 통해 현실에 찌들어 사는 우리 삶 속에 해방감과 희망을 제시한다.
살바드로 달리가 꿈같은 초현실의 세계로 매력을 보여주었다면 아세움 작가는 이상향의 풍경을 사막 속에 아름다운 고양이와 선인장으로 우리들을 꿈과 희망으로 위로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아세움이 캔버스에 담아내는 풍경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이다.
그 거친 삶 속에서 선인장으로 아픔을 치유하고, 나비와 열기구로 희망과 유토피아를 선물하는 아세움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몽상이 현실이 되는 이상향의 마술세계를 펼쳐 보인다.
우리가 그녀의 그림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무채색 같은 사막에서 벗어나 꿈꾸는 희망의 유토피아로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면서 해방감을 만끽한다.
이것이 아세움 그림의 권력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움직이는 화가라는 아세움,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평화롭고 사랑스럽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아니 사진 속의 풍경처럼 멋지고 아름답다.
”|구름처럼 애드벌룬이 푸른 하늘 여기저기 떠다니고, 혹은 그 아래 예쁜 나비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 상상 속의 꿈처럼 멋진 사막이 있는 풍경이 사실처럼 보이는 아세움 몽상의 세계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언제나 선인장이 있다. 하늘 아래 똑같은 선인장은 없다고 하는데, 그림속의 선인장은 대부분 멕시코산 용식목이 주류를 이룬다.
높이는 4m까지 자라는 기둥 선인장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고 돌연변이 변화로 생기는데 그 외양이 신비로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사랑받는 선인장 옆에는 보기만 해도 안아주고 싶은 귀여운 ”로이“ 고양이가 얌전하게 웅크리고 있다.
우리는 이 하늘을 날고 있는 풍경과 고양이를 향해 묻는다. 왜 작가는 고양이를 그리는가?
이렇게 작가의 화폭에는 무엇보다 모티브 대부분이 고양이를 두고 이야깃거리가 펼쳐진다. 그 고양이는 푸른 하늘 아래 사막을 거닐거나 뛰거나, 선인장 위에 올라앉아 있거나, 하늘을 둥둥 나는 모습까지 비현실적인 몽상의 풍경이지만 보는 이를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물론 작가는 방어하는 속성을 지닌 가시 선인장이나 발톱 고양이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정 이입하면서 치유의 에너지를 획득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고양이의 색깔도 흰 고양이에서 검은 고양이, 블루빛, 회색 고양이까지 다채롭다.
그러나 이 모두는 행복한 고양이이다. 원래 고양이는 오랫동안 인류로부터 반려동물로 사랑받아 왔다. 역사로 치면 약 10만 년에서 7만 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는 고양이를 새 사냥에 이용하는 벽화그림도 있고 당연히 음식을 훔치는 쥐가 가장 두려워하는 고양이를 무척 예뻐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과 쉴 곳을 마련해주고, 심지어는 고양이가 죽으면 자기의 눈썹을 밀어서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고양이에 관심이 많아 소중한 가족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고양이 미라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아세움의 고양이도 반려견의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고양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고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민화속에서, 까칠하고 연약한 고양이들을 영조시대 최고의 초상화가 변상벽이 숙련된 기량을 바탕으로 고양이 그림 영모화를 남기고 있다.
작가가 그 의도를 희망하듯 예로부터 한국에서도 고양이는 안일과 장수의 복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세움의 작품 속에 고양이는 사실적인 묘사와 한 올의 표현에도 조금의 소홀함이 없고,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눈빛, 그리고 방울처럼 매단 나비까지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 질감까지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마치 17세기 인물의 심리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벨라스케스의 고양이처럼 화가를 대체해서 그려낸 페르소나처럼 보인다.
마치 바로크 이후 화가들이 자신을 고양이와 일치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세움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드로 달리에게서 영향받은 듯한 몽상적이고 상상적인 구성과 기법이 선인장과 고양이의 매치로 인간이 갖는 불안의 감정을 메타포적으로 형상화 하는 특성을 보인다. 작가는 때로 다가오지 않는 무표정한 고양이의 귀엽고 익살스러운 무심한 고양이의 표정을 화폭에 투사한다.
매혹적이고 여유로운 그 어떤 표정보다 고민이 없는 고양이에게서 그녀는 자신을 고양이처럼 동일시하거나 감정 이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고양이의 선천적인 행복감과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런 행복감을 힘든 현대인들에게 전해주면서 이 몽상적인 풍경으로 희망과 위로와 용기를 작가는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