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범주론 Ⅱ
미적 범주론은 개개의 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 이상의 미적 개념을 상호 관계하는 데서 체계적으로 전개할 때 처음으로 성립된다. 그 의미로 최초의 미적 범주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에드먼드·버크(Edmund Burke)에 의한 『숭고와 미의 개념의 기원류(起源流)』(1757)이다. 미학적 고찰의 발전과 함께, 대상의 미질로서는 반드시 미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이 있다는 사실이 인식된 것이 버크의 논고 배후에 있다. 그 때 숭고(崇高)’가 선택된 것에 대해서는 낭만주의로 향하는 취미의 조류와 숭고의 개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 관계되어 있다.〈이 개념은 1674년 출판된 Pseudo-Longinos의 수사학서 『숭고론』의 프랑스어 번역서로 18세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숭고와 함께 주목받은 미적 개념은 우미이다. 그레이스는 ‘미의 세 여신’을 가리키는 말로 예로부터(그리스어 karis, 라틴어 venustas/gratia)를 미의 매력으로 가리켜 왔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주로 인간의 매력으로 이용되며 유럽에 널리 퍼진 ‘말하자면 매력(이탈리아non-so-ch, 프랑스어 le je-sais-quoi’의 실질은 우미와 일치하고 있었다.〈Cf. Tatarkiewicz, History of Aesthetics, Ⅲ, pp. 201-02〉 18세기 초두에 포프(Alexander Pope)가 우미를 ‘기술을 초월한 행운’에서 ‘심정에 직접 호소하기 시작한 힘’으로 규정했지만〈Alexander Pope 『批評論』, Alexander Pope, An Essay on Criticism, 1711〉, 미와의 대비에 관해서 유명한 것은 화가 호가스(William Hogarth)가 쓴 화론이며〈W·Hogarth, The Analysis of Beauty, 1753〉, 미의 선으로서의 직선에 대해 사행선을 우미의 선이라고 불렀다. 근대에 있어서 우미가 동물이나 인간의 운동의 미라고 보여지는 것은, 호가스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그 후 미라든가 숭고의 고찰은 칸트로부터 계승되고 우미에 관한 철학적 고찰은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에 의해 전개되었다.〈F·Schiller, ber Anmut und Wrde(우미와 존엄) 1793〉
이들 제개념을 통합해 체계화한 최초의 미학자는 빌헬름 트라우고트 크뤼그(Wihelm Targott Krug)이다. 그는 미학 체계를 미학이론과 예술이론으로 대별하고, 그 전자 순수취미론을 미적 관념학과 미적 판단학으로 나눈다. 이 미학 개념학(sthetische Ideologie)은 정말로 미적 범주론 혹은 미적 개념론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미적 기본 성격에 의해 미와 숭고를 유연적(類緣的)인 제개념으로 보완하여 이것들 세 가지에 의해 관념학을 구성한다. 제3의 그룹에는 20전후의 미학개념이 거론되고 있다.〈크뤼그는 3개부분의 각각의 조어에 의한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말하자면, 미의 부분은 미학(Kalleologie), 숭고 부분은 숭고학(Hypseologie), 파생적 제개념은 동족학(Syngeeiologie)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