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종로구 누하동 이상범가옥에서 《이상범, 인왕산 너머로 기우는 달빛 아래서》전을 6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개최한다. 이상범가옥은 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자택이자 화실로 사용된 공간이다. 종로구 고택 활용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이상범가옥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첫 번째 전시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소장한 이상범의 작품과 관련 자료들이 선보여진다.
청전 이상범은 개성적인 산수화풍으로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했던 한국화의 대가이다. 이상범은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후 여러 차례 특선했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고문을 맡은 이름 높은 수묵산수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이상범은 수백 장의 신문 소설 삽화를 그린 삽화가이기도 했다. 1920-30년대에 이상범은 시대일보(중앙일보의 모체),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기자로 재직하며 신문 연재소설에 실릴 삽화를 그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또한 보도사진의 편집, 수정 업무를 맡은 언론인이기도 했는데, 1936년에는 마라톤 선수 손기정의 사진에 찍힌 일장기를 지워 경찰에 구속되고 동아일보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수묵화가, 삽화가, 언론인으로서 바쁘게 생활한 1920-30년대 청년기 이상범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출품된다.
전시에 출품된 안중식의 『심전화보』(1920-30년대)와 이상범의 「나의 교우반세기」(1971)는 이상범의 사사관계와 교우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심전화보는 이상범의 스승 안중식의 화보집이다. 이상범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14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미술 교육기관인 경성서화미술원에 입학하고부터다. 경성서화미술원은 조선시대 말의 산수화풍을 근대기 화가들에게 전수해준 기관으로 평가되는데, 이곳에서 이상범은 조선 말의 도화서 화원인 장승업의 제자, 안중식, 조석진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이곳에서 그림을 배운 화가로는 김은호, 노수현 등이 있는데, 이상범과 노수현은 특히 절친한 사이였음이 「이상범, 교우반세기」에서 증언된다. 당시 서화미술원 동문들은 서로 절친하게 어울려 다녔고, 학생들이 3.1 운동에 대거 참여하여 학원이 문을 닫게 된 이후에도 학생들은 안중식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배웠다고 전한다.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도록(1922)도 출품된다. 서화미술원에서 공부한 이상범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이상범은 1회에 입선한 이후 4회부터 연속 특선을 이어갔으며, 18회부터는 심사위원 자격이 주어졌다. 이 시기 이상범은 동서양 미술의 융합을 위해 고전적 산수화에, 서구 풍경화의 사생 개념을 도입하며 근대적인 사경산수화의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특전을 이어가던 이상범의 작품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일반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었다. 이는 동아일보가 제작한 이상범 <춘경> 달력(1935)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선미술전람회는 서울, 원산, 개성 등 전국에서 모여든 미술동호인들로 가득했고, 전람회에는 하루 평균 1,00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아왔다. 이상범의 산수화는 일반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 또한 높았다.
그러나 한정된 장소, 일정한 기간 동안 입장료를 받아 운영되는 전람회가 모든 계층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범은 1920-30년대에 신문사의 기자로 재직하며 신문 연재소설에 실릴 삽화를 그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는 염상섭, 이광수, 김동인, 심훈 등의 문인들과 교우하며 그들의 소설 삽화를 그렸다. 이상범이 그린 신문 소설 삽화는 수 백 장에 이르는데, 이번 전시는 대표적으로 심훈의 <상록수> 삽화(1935)를 보여준다. 전시의 제목인 ‘인왕산 너머로 기우는 달빛 아래서’ 역시 상록수의 한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1부 마지막 장면, 인왕산 너머로 기울어가는 달빛 아래서 주인공 동훈과 영신은 서로를 처음 이해하게 되고 농촌으로 내려갈 것을 다짐하며 이야기의 ‘시작’을 ‘마무리’한다. 하루의 끝, 새로운 시작,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이 시공간은 수묵화가, 삽화가, 언론인 이상범이 자택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갑기의 「소설삽화와 삽화 제가5」(1930)와 윤희순의 「신문삽화편견」(1932)은 이상범의 삽화에 대한 당시의 평가를 보여주는 자료다. 미술평론가 이갑기는 이상범이 조선미술전람회의 특선 작가임이 의심될 정도로 그의 삽화가 범렬(凡劣)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미술비평가 윤희순은 신문 삽화의 교육적인 효과에 주목했고, 신문 삽화가 대중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회화 예술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미술 감상의 기회가 적었던 조선인에게 신문 삽화는 감상의 대상이 된다고 한 것이다. 윤희순은 신문 삽화가 미술의 대중화, 생활화를 실천하는 수단이며, 대중들에게 지식을 보급하는 교육의 장이라 보았다.
신문 연재소설의 삽화가인 동시에, 이상범은 신문 보도 사진을 편집하는 언론인이기도 했다. 그가 동아일보사에 재직하던 1936년에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마라톤 경주를 우승했다. 이때 이상범은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사진 기자와 공모하여 우승 사진에 찍힌 가슴 위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하였다. 이로 인해 동아일보는 발간이 정지되었고, 이상범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후 더 이상 신문사에 있을 수 없게 된 이상범은 자택에 청전화숙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고, 이곳에서 배렴, 심은택 등의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전시에 출품된 「월계관 쓴 손기정」(1936)은 청년 이상범이 겪은 삶의 굴곡과 민족의 애환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전시 오프닝 행사는 6월 4일 오후 3시 이상범가옥에서 진행된다. 또한 전시 연계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상범가옥의 마당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수묵화 부채를 만드는 선화(부채그림) 그리기 체험, 작은 정원을 가꾸어보는 테라리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프로그램은 5월 8일부터 진행되며, 참여 신청은 전용 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전시 연계 릴레이 세미나도 준비되어 있다. 9월 11일부터 10월 4일까지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이상범과 한국근대미술을 주제로 한 명사들의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이다. 9월 11일 미술사학자 최열, 9월 20일 미술사학자 조은정, 9월 25일 미술사학자 목수현, 9월 27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이선민, 10월 2일 미술사학자 권행가, 10월 4일 미술사학자 이태호가 발표한다.
김달진 관장은 “이상범의 귀가에 관람객을 초대하는 이번 전시는 이상범의 행적과 동시에 근대기를 살아간 한 청년의 삶의 모습을 확인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이상범가옥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곳에서 생활한 화가의 모습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상범가옥이 더욱 알려지고 많은 분들이 방문하시게 되길 바란다”라고 전시 기획의 의도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