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은 편지

[백지상의 아트힐링] 닿지 않은 편지

한 40대 부부가 법원에 이혼신청을 한 상태에서 상담자인 필자를 찾아왔다. 이혼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서로 정리의 기회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덜 주면서 이혼하는 방법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부부들은 의사소통이 막힐 때 이혼을 선택한다. 미국의 저명한 존 가트맨 박사는 37년간 3000쌍에 이르는 부부를 관찰하면서 성격, 가치관,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 요인을 분석했지만, 결국 결정적으로 이혼에 이르게 되는 요인은 부부의 대화패턴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부부의 일상생활을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맥박, 호흡, 표정 등을 관찰 후 이혼에 이르는 대화는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처음에 비난이 시작되면, 그에 대해 서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방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다시 비난하면서 경멸하게 되고, 이러한 대화패턴이 반복되면 마침내 냉담해지고 회피하고 포기하면서 대화는 단절되고, 서로에게 마음의 담을 쌓은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쯤되면 이혼은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필자는  부부를  10주 동안 심리상담을 하면서, 매주 조금씩 느낌을 담아   ‘닿지 않은 편지’라는 아래의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백지상,  '닿지 않은 편지',  mixed material,  2024 
                                                  백지상,  '닿지 않은 편지',  mixed material,  2024 

 

당신과 잘 지내고 싶어,

당신한테 사랑받고 싶어 ,이렇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비난받을까봐

사랑받지 못할까봐 목에 삼키고

결국 내 뱉은 말은 "당신이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

그렇게 부부는 진심을 숨긴 채 아이처럼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며 소중한 삶을 흘려보낸다.

-작가 노트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소통은 더욱 힘들다. 진심은 가려지고 오해가 오해를 낳기 쉽다. 왜 이렇게 소통이 힘든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우리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상대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은 정확히 비례한다. 즉, 사랑받고 싶을수록 사랑받지 못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들어서 진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즉, 상처입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어적으로 되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본의 아니게 내뱉게 되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상대방의 입으로부터 험한 말을 내뱉게 만들면서,  버림받는 데에 대한 두려움을 사실로 실현되게 만들고 만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칭한다.

 

             백지상,  "닿지 않은 편지" 중 일부-  가슴 속 편지,  mixed material, 2024
             백지상,  "닿지 않은 편지" 중 일부-  가슴 속 편지,  mixed material, 2024

 

부부간의 갈등에 대한 해답은, 자신의 사랑받으려는 욕망을 인정하고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한 욕망이 깊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방어적인 태도는 상대의 공격을 더욱 이끌어내기 쉽다. 우리를 낳아준 부모를 제외하고는, 성인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방어를 내려놓고 취약해진 상태에서 사랑을 전달할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 즉 사랑 앞에서 우리는, 사랑받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우선 갖추어야 한다.

10주간의 상담을 통해 부부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깨달으면서 다시 사랑하며 살기로 결정하였다.

 

백지상  프로필

서양화가. 상담심리학 박사. 치유예술작가협회(HAA)회장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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