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와의 조우

필자는 최근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어릴 때는 어른은 부모를 보낼 때 슬프지 않은 줄 알았다. 어릴 때 친가든 외가든 조부모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어른들은 대체로 잘 웃고, 잘 드시고, 잘 떠들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하나뿐인 딸로서 장례를 치를 때 잘 웃고, 잘 먹고, 조문객들 사이에 앉아 수다도 곧잘 떨었다. 그러나 오히려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낳아 길러보고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게 된 상태에서의 이별은 오래 끓인 국처럼 더 진하게 슬프다.

최근 몇 년간의 어머니의 투병과정이 잔혹하리만큼 만만치 않았기에, 또한 주 보호자로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던 과정도 만만치 않았기에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는 어머니의 고통이 해소되어 평안하시기를 기도해왔다. 임종을 지키던 순간에도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가시라는 말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의 이별은 먹먹하다.

부모와의 이별은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애증의 순간을 다 포함할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무의식적인 심리적 의존과의 근본적 이별을 의미한다. 삶이 아플 때, 힘들 때, 지칠 때 대놓고 투정을 부리며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대체로 부모뿐이므로, 진정한 의존대상을 잃고 의존대상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뜻밖에도 평상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연결을 가져온다. 즉 영혼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죽는 것을 ‘돌아간다’라고 표현하는데 누가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무심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로 간다’고 하는데, 그 ‘하늘’이란 과연 그저 상징인가. 지인의 부고를 듣고 누구나 하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말에는 고인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으며 영혼의 길에도 길흉화복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영혼과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그 누구나 무심코 말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가볍고 무심한 인정이,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이후에는 진정한 관심과 인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별을 배웅하다가 마주친 벽,

벽은 문을 담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간 이의 흔적을 쫓아

벽 너머 미지의 세계를 그리다.

-작가 노트 중에서

 

                백지상, 미지와의 조우_80x50_oil on canvas_2017
                백지상, 미지와의 조우_80x50_oil on canvas_2017

 

위의 작품은 2017년, 필자의 스승님이었던 분의 모친상 소식을 듣고 떠오른 심상을 표현한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그 날 새벽 화장실에서, 스승님은 언뜻 어둠 속에서 별들이 흩뿌려진 이미지를 환시처럼 보셨고 모친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하셨다. 그 당시만 해도, 어머니의 죽음이란 내게는 먼 일처럼 여겨졌지만, 남의 일 같지 않은 뭔가 묘한 감정이 느껴졌고, 돌아가신 분의 영혼에 대한 명복을 작품으로나마 빌게 되었던 것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또 하나의 태어남이라면, 우주의 자궁과 같은 붉은 산이 있고, 영혼을 담은 흰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으며, 죽음의 탄생을 축복하는 우주의 별들이 빛나는, 그러한 알지 못하는 세계를 잠시 스쳐지나가듯 떠올려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니를 보내며, 이미 오래 전 시집보낸 작품인데 마음에 떠올라 사진이나마 찾아보게 되었다.

몸을 벗은 영혼이 있다면,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로 가신 걸까. 어머니의 영혼에도 저렇게 빛나는 별들이 반가이 맞아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언젠가 벽을 넘어 우리가 만날 수 있으며, 이미 보낸 사람들 또한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걸까?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서 지극히 중요하지만 한 번도 깊이, 진지하게는 답해보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가?”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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