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하늘로 뻗어가는 힘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의 ‘황무지’ 중에서-

 

​4월이 되면 우리는 흔히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를 떠올린다. 꽃이 피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4월이 왜 잔인한 달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엘리엇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2년에 이 시를 발표했는데, 전쟁 이후 현대문명의 황폐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기도 하고, 부친의 작고와 아내와의 불행한 결혼생활 등을 잔인함의 이유로 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해석은 사랑하는 친구 장 베르디날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달이 4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 베르디날이 단순히 친구였는지, 애인이었는지는 그가 죽을 때까지 함구하였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아무튼 만물이 소생하는 꽃의 달인 4월이 역설적으로 잔인한 이유는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다운데 나만 불행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일 것이다.

필자 또한 2014년 4월 이전까지는 ‘황무지’라는 시가 엘리엇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4월에 대한 독특한 해석 정도로 다가왔다. 그런데 2014년 4월에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트라우마를 갖게 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그 참사는 영원히 우리의 4월을 잔인한 4월로 변형시켰다. 특히 유가족들에게 4월은 얼마나 잔인한 달로 다가올 것인가. 더욱 잔인한 것은 그러한 상실은 시간이 지난다고 쉽게 아물어지는 종류의 상처가 아니므로, 영원성을 띤 잔인함인 것이다.

 

공허의 도시

겨울날 새벽 갈색 안개 속으로,

군중이 런던교 위로 흘러간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T.S 엘리엇의<황무지> 중에서

 

​2014년 그 해, 필자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지만 모든 일을 제쳐두고 안산으로 달려갔었다. 참사 직후 안산 고대병원에서 생존자 아이들에 대한 심리치료와 교육을 담당하였고, 그 아이들이 퇴원 후 모 연수원에 일정 기간 있을 때에도, 또한 그 지역의 청소년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유가족과 생존자 아이들을 상담해야할 지에 대해 교육하기 위해 안산을 제 집 드나들듯 방문하였다. 한편으로는, 상담심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되지 않는 감정들 때문에 더 뭔가를 해야만 했다.

 

         백지상, 案山_고통은 하늘로 뻗어가는 힘_50x50_oil on canvas_2018
         백지상, 案山_고통은 하늘로 뻗어가는 힘_50x50_oil on canvas_2018

 

그 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나이프로, 나의 가슴을 치듯이 캔버스를 긁어대며 기울어진 배 대신 단단한 산 위에 나무를 심고, 노랗고 따스한 불빛들을 나뭇가지 위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고통은 하늘로 뻗어가는 힘’이란 부제를 달았다. 비탈 위에서라도 기어이 생존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나무처럼 아이들의 영혼이 그러하기를 기도하면서. 마지막 사인을 할 때는 차마 제작 연도를 쓰지 못하고 0416이라고만 썼다. 연도를 쓰는 순간 모든 것이 그 해로만 끝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 후에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많은 왜곡이 일어났고, 결국 여러 측면에서 우리 국민 모두의 심리적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적어도 예술가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상처를 개인적인 상처로 받아들여 진정으로 아파하고 표현함으로써 다시 사회적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해 안산(案山), 상실로 황폐한 산에 필자는 작고 메마른 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그 나무에 매년 기억이라는 자양분을 주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우리가 현재 각자 겪고 있는 고통을 자양분 삼아, 사회적으로 공감을 확대하며 2014년 4월의 아이들이 하늘에서 평안할 수 있도록 예술로나마 고통을 승화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고통은 하늘로 뻗어가는 힘’, 이라는 부제처럼.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외래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