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장애와 예술
쿠사마 야요이는 원래 예술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그녀에게 보이는 환각들을, 그림으로 옮겨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사랑보다는 학대를 받으며 골방에 파묻혀 그림만 그리던 그녀는, 열 살 무렵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가 사방으로 번지면서 붉은 점으로 뒤덮이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 꽃무늬는 둥근 물방울무늬로 변형되어 훗날 그녀의 작품 제작에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고, 그녀의 물방울무늬에 대한 강박은 관람객에게 전이된다.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불합리한 사고나 행동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강박장애는 불안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강박사고와 그것을 완화시키려는 강박행동으로 구분된다. 대부분 강박사고와 행동을 떨쳐버리고자 하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떨쳐지지 않아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태에 이른다.
어젯밤에 자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친구한테 전화해서 나쁜 말을 했으면 어떡하지
그 나쁜 말이 진짜로 전달되었으면 어떡하지
그 말을 듣고 친구가 자살하게 되었다면
또 그 가족이 나중에라도 복수하러 오게 된다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핸드폰을 멀리 두고, 손은 묶어두고 자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그렇게 될까봐
나는 지금도 행복할 수가 없어요.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와서
한 순간도 쉴 수 없어요.
-상담 중 박지은(가명)의 말 중에서-
필자가 상담자로서 비교적 오랜 기간 만나온 30대 초반의 박지은(가명)씨는 똑똑하고 재능이 많지만 성장과정에서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며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그녀는 7살에 엄마를 암으로 여의었는데, 엄마의 장례식에서 혼자 철없이 웃고 놀았다는 죄책감과 가장 중요한 의존대상을 잃어버린 데에 대한 상실감이 그녀의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청소년기에 어느 한 친구의 자살과, 또 친했던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더해지면서 강박장애와 불안장애로 발현되었다. 불길한 숫자를 접하거나, 뉴스에서 사건사고를 접할 때마다 증상은 증폭되곤 했다. 강박장애로 인한 고통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혼자만의 끊임없는 압박들을 가까운 가족한테도 설명하거나 이해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괴로운 증상이다. 강박증이라는 증상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가족 상담을 별도로 여러 번 진행해야만 했던 적도 많이 있다.
그런데 박지은씨는 한 번도 제대로 그림을 배운 적도 없이, 또 필자가 관련 주제나 표현방법을 제시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증상을 훌륭히 표현해내었다. 지은씨의 삶을 오랫동안 지배한 증상이기에 그림 또한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완성도와 무관하게, 필자는 강박증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작품을 보지 못한 듯 하다. 머리속을 가득 메우는 일정한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을 통제하려는 생각들, 그 생각들의 어지럽지만 일정한 패턴 등
쿠사마 야요이는 “저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예술가입니다. 나의 예술은 내가 볼 수 있는 환각에서 유래되었고, 나는 조각과 그림으로 나를 괴롭히는 환각과 강박 이미지를 변환합니다. 내 모든 작품은 강박 신경증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불가분하게 내 질병에 연결되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녀의 끝없이 반복되는 강박장애는 한편으로는 창작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치유과정이었던 것이다.
진단명은 없더라도,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아프다. 그래도 아픔을 표현함으로써 승화할 수 있는 예술과 함께 한 삶이, 쿠사마 야요이에게 한편으로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증상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 속을 고통스럽게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도.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