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적 작품시리즈 #4-관계

새끼 말은 출생 후 약 30 분 정도 경과하면 스스로 일어나고, 한 시간 정도 경과하면 어미젖을 빨게 된다. 뻐꾸기는 어미에 의해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의 둥지에 버려져도 진짜 어미의 알들을 밀어내며 살아남는다.

이에 비해 우리 인간은 매우 연약하다. 태어나서 최소 3년에서 5년까지, 심지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철저히 부모에 의존해야 하며 혼자서는 생존하기 힘들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건 오로지 집단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인(人)자는 서로 기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에 서로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로부터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갈등을 한다. 타인 없이는 생존할 수 없지만, 타인 때문에 생존이 위협받는 삶이기 때문이다.

 

                 백지상, 彼岸4_65.1x53_acrlylic on canvas_2020 
                 백지상, 彼岸4_65.1x53_acrlylic on canvas_2020 

 

기대고 싶다면

내가 먼저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사람들은 아직 외롭다.

혼자서도 충분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어깨를 내어준다.

서로 기댈 수 있을 때만이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노트 중에서-

 

위의 그림은 필자의 투사적 작품 시리즈 중 하나로서 ‘관계’에 관심을 둔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찬찬히 감상하면서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라.

 

“바다를 보며 앉아있는 두 사람은 어떤 관계로 보이는가?”

“모래사장에 서 있는 뒤의 두 그림자는 어떤 관계로 보이는가?”

“앞의 두 사람과 뒤의 두 그림자는 서로 어떤 관계로 보이는가??”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늘 마음속에 가족을 담고 있는 중년의 가장에게 이 그림은 장성한 자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로 보일 것이고, 부모의 통제가 무척 싫었던 청소년에게는 친구와 함께 가출한 자신을 잡으러 온 부모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며,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하룻밤의 불장난이나 금지된 연애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답이든 각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관계에 대한 관심과 가치관과 욕구가 투사되어 보일 것이다.

저명한 사상가 마틴 부버는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고 하였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마틴 부버에 의하면 관계를 맺는 방식에는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가 존재한다.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 인격적으로 마주보며 ‘사이’에서 발생하지만, ‘나’와 ‘그것’의 관계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인 관계이며 ‘속’에서 발생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경험과 이용의 주체이며, 타인은 철저히 대상화된다. 즉 ‘나’에게 ‘그’는 이용의 대상으로서의 사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격적인 세계가 아닌, 사물의 세계, 무의미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사람을 ‘너’가 아닌, ‘그것’으로 바라본 결과로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주변에 진정으로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나’와 ‘너’의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나’와 ‘그것’의 관계를 맺고 있는가?

마틴 부버의 말을 덧붙여본다. “너와 나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 만날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나’가 되면서 비로소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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