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적 작품 시리즈 #3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은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개성화 과정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림자의 각성을 통해서 시작된다. ‘그림자’란 각자가 무의식에 억압해 놓은 열등한 특성들,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 측면에 있는 각자의 분신이다. 그림자는 부정적이며 열등한 측면들과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도덕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여우같은’ 성격의 친구가 이상하게도 너무 거슬리고 얄밉다면, 자신의 그림자를 대신해서 보여주는 사람일 수 있다. 무의식에 눌러놓은 여우같은 측면이 타인을 통해 나타날 때 자신이 숨겨온 영역이 자극되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자를 억압하면서 ‘나는 좋은 사람’ ‘나는 착한 사람’ ‘나는 정직한 사람’등의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지키고자 하나, 이는 온전한 자신이 아니므로 언젠가는 그림자의 각성을 맞이하게 된다.
내 안에 있기에, 내가 미처 모르는
미지의 영역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림자를 만나다
-작가 노트 중에서-
이 그림처럼, 그림자가 각성될 무렵이면, 마치 한 세계가 균열되는 것 같은 불길함과 불안함, 그러면서도 기존의 삶을 벗어난 어떤 새로운 삶에 이끌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오래 유지해 온 자신의 정체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당연한 듯이 믿어온 가치관이 뒤집어지기 시작하며, 한계에 부딪힌 느낌과 어떤 진실이 뿌리처럼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주로 인생의 전환점 앞에 선 이들이 끌려서 선택하는 그림이다. 이는 필자가 의도적으로, 그림자의 각성을 앞둔 이들의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해 그린 투사적 그림이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특히 중년기에 이러한 전환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며, 위기를 통해 자신이 부정해 온 무의식을 인식하고 통합하여 드디어 개성화가 촉진된다.
“이 그림에 대한 전반적 느낌은 어떠한가?”
“위의 그림에서 사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사람이 들어가는 곳엔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인가, 계속해서 앞으로 갈 것 같은가?”
“결국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위의 질문들에 답해보면서 각자 그림자의 각성을 이미 경험했는지, 혹은 앞두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라. 우리는 그림을 통해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각성할 수가 있다.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할 때는 관계에서 타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비난하지만, 그 문제가 실은 자신 안에 있는 어두움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숙하게 된다. 무의식 속에 있던 그림자가 의식 안으로 통합되며 우리의 인격은 좀 더 확장되기 때문이다. 어두움을 피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닌, 발견하고 품을 때 우리는 보다 온전해진다. 결국, 개성화란 우리가 드디어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