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적 작품시리즈 #2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에 이해할 수 없는 빈틈이 생길 때, 흔히 그 여백을 어떻게든 메우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모 연예인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갑작스런 은퇴를 하겠다고 발표하면, 아마도 결혼을 하는 게 아닐까, 혹은 불치병에 걸린 게 아닐까, 혹은 연예계에 신물이 난 게 아닐까 각자 추측하게 된다. 대체로 소문은 그렇게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어떠한 형태를 자신에게 보다 친숙한 패턴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려고 하면서 빈틈을 채우려는 경향을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구상화(Reification)라고 지칭한다. 구상화란, 사물이 존재하는 부분보다 전체 공간이 주는 정보에 의해 인지되는 경향을 말한다. 즉, 형태의 일부가 생략되어있을 때 인간은 각자 머릿속에 있는 친숙한 패턴을 참조로 하여 스스로 형태를 완성하여 인식한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인식할 때, 먼저 전체적인 형상을 찾게 되는데 부분보다 전체가 먼저 인지되는 현상은 출현(Emergence)라는 용어로 지칭된다. 

 

         백지상,  彼岸2_65.1x53_acrlylic on canvas_2020
         백지상,  彼岸2_65.1x53_acrlylic on canvas_2020

 

모호함은 불안을 부른다.

불안은 초조함을 부른다.

초조함은 어리석음을 부른다.

어리석음은 결국 파국을 부른다.

-작가 노트 중에서

 

이 작품 또한 필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려진 투사적(projective)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의 모호함은 관객의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특히 불안에 취약한 현대인들이 이 그림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안개 같기도, 파도의 물보라 같아 보이기도 하는 희미한 흐름들 속에서 바위 같기도, 빌딩 같기도 한 네모난 형체들이 불안정하게 떠 있다. 하늘은 아름다운 노을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디선가 불이 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사 중인 것 같은 도시의 분위기가 뭔가 안전하지 않게 여겨진다. 한 건물 위에 있는 검은 형체는, 자세히 보아야만 동물 같다. 건물에 새겨진 JK라는 이니셜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위의 그림에서 주인공은 누구인가?

“JK라는 이니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이 그림 속에 들어간다면 어디에 있을 것 같은가?

“그림의 다음 장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위의 질문들에 답해보면서 각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이 그림에서 ‘지구 멸망’을 읽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입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날 공식적인 명분이 필요하니까. 불안이 심한 내담자들의 경우, 상상 속에서라도 이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나이가 지긋한 직장인들은 이 그림에서 앞으로 다가올 위협, 즉 실업을 감지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위의 그림의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모호한 그림의 정보를 구상화의 과정을 거쳐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여러분 각자의 욕구와 가치관, 감정과 심리적 상태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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