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석장에서 망치와 끌을 가지고 놀던 천재 소년 >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71x71 (1514년)
르네상스 시대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사후 500년을 기념하기 위한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회가 로마에서 열렸다. 2020년 3월 5일부터 6월 2일까지 진행되는 전시회로 이 날을 기다린 애호가들로 온라인 사전 판매에 서 7만장이나 팔렸다. 라파엘로의 특별한 전시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라파엘로 작품은 전 세계 박물관과 국제적인 컬렉션에 흩어져 있었다. 작품을 한 자리에 집합시키기 위해 3년 동안 준비해야 했다. 또한 기획자는 수많은 곳에 설득을 해야만 했다.
바사리가 ‘화가의 왕자’라고 부른 라파엘로는 엄청난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재능을 질투했다는 라파엘로는 어떻게 어린 나이에 성공하게 되었을까? 이탈리아 북동부에 우르비노라는 작은 마을에 그의 집이 있다. 아버지 조반니 산티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 화가이면서 시인이었다. 어린 라파엘로는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프레스코 기법과 예술적 기초를 배웠다. 그러나 갑자기 고아가 된 라파엘로는 제사장이었던 바톨로메오 삼촌에게 맡겨졌다.
라파엘로는 아버지의 작업실을 물려받아서 가동시켰다. 그는 초기에 아버지의 작업장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스튜디오를 계속 관리하면서 아버지를 빠르게 능가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우선적으로 당시 명인이었던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그들의 화풍을 적용하고 발전시킨 결과 큰 작업장을 운영하게 되었고 수많은 작품을 생산했다.
라파엘로는 바티칸에서 일할 때 명성을 얻었다. 그들은 교황이 사망한 후에 다음 교황 때에도 교황과 궁정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라파엘로의 인맥 관계의 범위는 레오 10세의 개인 비서와 교황의 골동품 수집가 겸 서적 수집가까지 확대되었다. 모든 것은 독점적인 후원 하에 라파엘로는 생산성 높은 황금시대를 맞았다. 권력자들과 친밀한 관계로 중요한 커넥션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교황들의 초상화와 대규모 작품을 계속 의뢰받은 것은 재능이 뛰어났기는 했지만 이러한 화려한 라인업이 작용한 것이었다.
로마의 고대 유물 보존자 로 임명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젊은 나이에도 빠른 성공은 부친의 강경한 훈육법의 영향이었다. 교황 레오10세는 라파엘로를 위대하게 생각하여 추기경 직위까지 추인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갑자기 사망하자 크게 애도하며 국가 장례를 치르게 했다. 라파엘로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