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시한 스캔들로 유명했던 수사'
미술사에 수사의 신분으로 세속적인 쾌락을 누렸던 방탕한 화가가 있었다. 금기시한 그의 스캔들을 알게 된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으니 수사였던 그가 어떻게 화가로 명성을 누리게 되었을까?
리피는 불운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미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물을 해석하는 방법과 명암을 적절하게 응용할 줄 알았으며, 입체적으로 그리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는 최초에 원근법을 사용한 예술가인 마사초의 유일한 제자였다. 30세 되던 때에는 수도원을 나와서 수사와 화가로서의 삶을 병행하였다. 그림 솜씨로 점점 명성이 높아졌고 운 좋게도 최고의 예술 후원자이자 당대 최고 권력자이며 부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에게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세속적인 쾌락으로 여자를 매우 좋아하는 음탕한 습성이었다. 코시모는 그의 속된 마음을 알게 된 후 세속을 끊게 하려고 강제로 가두고 그림을 그리게 했지만 매번 도망가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수사의 신분으로 충격적인 성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리피는 피렌체 근처의 작은 성당에서 큰 프레스코 벽화를 연작으로 그리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가 50세 때근처 수도원의 아름답고 젊은 수녀인 루크레치아 부티에게 반해 버렸다. 수녀 원장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설득한 후 수녀를 유혹해서 육체를 범하였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그려진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는 당시 23세였다. 수녀는 신비로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 이다. 기가 막힌 것은 그녀만 범한 것이 아니었다.
리피는 육체적인 욕구를 신성한 종교 작품에 교묘히 뒤섞어 놓았다. 이후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한결같이 루크레치아가 모델이었다. 리피의 후원 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부를 축적한 만큼 회개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자신의 재력으로 교회에 헌금하므로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종교화를 의뢰한 자들은 죄 사함과 함께 과시욕도 있었다. 코시모는 리피에게 이제껏 시도된 바 없는 작품을 의뢰했다.
<아기예수 경배> 작품은 <동방박사 경배>만큼이나 많은 화가들이 그렸던 예수 탄생이 주제이다. 기존에 익히 알고 있었던 구름을 타고 목자나 동방 박사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 틀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예수 탄생에 흔히 등장하는 마구간은 처음부터 배제 된 혁신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리피는 <아기예수 경배>를 완성한 10년 후에 사망했고 제단화는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리피의 작품도 유명했지만 금기시한 스캔들은 대중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가십거리였다. <아기예수 경배>는 그렇게 해서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신기하게도 자극적인 주제가 흥미로운 이슈로 작용하는지 최근에는 리피의 평판이 좋아졌다. 사회의 이중성은 금기시한 스캔들을 비난하면서도 흥미로 삼는데 익숙해져 있다. 더군다나 상품화하여 작품 가치까지도 높이는 기이한 현상은 현대에도 반복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