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감수성과 여성성, 그리고 자연의 교감을 세계화로 이끄는 회화적 여정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강남구 도산대로 예당갤러리에서 2025년 1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열린 강정희 작가의 개인전 ‘형상의 서정’은 단순한 작품 감상이 아닌, 작가의 삶과 예술적 철학을 꿰뚫어 보는 자리였다. 전시 마지막 무렵 만난 강정희 작가는 9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직접 소개하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구축해온 독자적 회화 세계를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풀어냈다.
작가는 올해 말을 끝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다. 내년 1월 중순부터는 샌프란시스코 영사관 초대전이 이어질 예정이며, 강정희 작가에게 이번 서울 전시는 2025년 한 해의 정리를 의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것은 저에게 모험입니다. 늘 새로운 경험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림에서도 같은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늘 새로운 재료·새로운 감각·새로운 이미지를 시도합니다.”
이 한마디에는 작가의 모든 작업 원칙이 담겨 있었다.
자연·여성·감정이 하나 되는 ‘형상의 서정’
강정희 회화의 중심에는 ‘감정의 이미지화’라는 명확한 화두가 있다. 꽃, 과일, 동물, 여성의 형상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감정의 주체로 존재한다. 화면 위에서 자연과 여성은 서로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응시하고, 색채는 감정의 흐름처럼 유려하게 번진다.
최근 작업인 ‘Tea Time’, ‘Waterfall’, ‘Leopard’, ‘Buffalo’ 시리즈 역시 이런 감정적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인이 자연과 조우하며 생성하는 심리적 유대는, 인간과 자연, 감정과 존재에 대한 작가의 오랜 질문을 상징한다.
강 작가는 자신이 선택하는 재료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제 체험을 담고 싶었어요. 모래도 쓰고 자갈도 쓰고, 반짝이도 쓰고… 오일과 혼합해서 화면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죠. 오일 자체가 변형을 일으키며 색을 바꿔갈 때,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아름다움이 나옵니다.”
그녀의 유화는 때로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때로 장식적이면서 동양적 기품을 품는다. 이는 한국 전통 섬유, 무명, 삼베, 모시, 양단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과도 연결된다.
“전통 섬유는 여성의 기억이며 한국적 미학이죠. 저는 그 감성을 회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미국과 한국, 두 세계를 오가며 확장되는 감각
강정희 작가는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도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현재는 미국에서 오이코스대학 서양화 교수로 재직하며, 아트코리아방송 샌프란시스코 지회장을 맡고 있다.
각국의 시각 차이를 묻자, 작가는 미국 미술 환경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예술 교육을 꾸준히 받아요. 그래서 그림에 대한 감식 자체가 강합니다. 누가 좋다고 해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다’고 판단해야 움직입니다. 그들의 관점은 명확하고 단단해요.”
한국적 정서와 세계화된 감각을 동시에 품은 작가의 회화는 미국 현지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내년 샌프란시스코 영사관 초대전 역시 이러한 활동적 확장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추천, 심사, 수많은 제출 과정… 하나도 쉽게 된 것은 없어요. 모든 과정이 치열한 ‘프로세싱’이었습니다.”
그 치열함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는 안정된 구도보다 언제나 새로운 구조와 시도를 택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한국 작가들의 국제화를 향한 조언
강정희 작가는 자신이 거쳐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점을 명확하게 말했다.
“아이디어입니다. 누구도 하지 않은 것. 아이디어와 창조성, 그리고 많이 연구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색다름’이에요.”
세계 예술계의 언어는 결국 고유성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아이디어의 독립성’은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위한 가장 실질적 조언이기도 하다.
작품과 삶, 그리고 감사의 인사
최근 강정희 작가는 오일이 아닌 새로운 재질의 캔버스와 다양한 미디엄의 조합을 실험하고 있다. “하나의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는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인터뷰 말미, 작가는 아트코리아방송에 대한 소회를 남겼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트코리아방송이 많이 알려졌고, 저도 여러 지인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발전하실 거라 믿습니다.”
한국적 감성, 여성성, 자연성…
강정희 작가의 회화는 결국 ‘감정의 서사’를 그려내는 여정이다.
그녀의 작품은 자연의 이미지 속에서 여성의 내면을 발견하고, 색채의 움직임 속에서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며, 모험적 재료를 통해 ‘감정의 촉감’을 시각화한다.
한국과 미국, 두 세계의 정서를 오가며 구축되는 이 복합적 회화 세계는 단순한 미학을 넘어 ‘한국적 정서의 세계화’라는 확장된 의미를 보여준다.
강정희 작가의 다음 여정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질 또 다른 회화적 모험을 기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