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치유부터 훈제된 나무 색소폰까지… 차세대 미술의 방향성을 드러내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2026년 프리즈 로스앤젤레스가 차세대 미술의 흐름을 여는 무대가 되고 있다.
Stone Island의 지원을 받아 구성된 Focus 섹션은 올해 특히 젊은 작가들의 실험성과 서사적 확장력이 돋보인다.
신화적 상상력, 재료의 해체, 장애와 디자인의 문제, 제국주의와 정체성의 층위 등 오늘의 예술이 마주한 질문들이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중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5인의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전시 전략과 작품 세계를 분석한다.

타마르 에툰
드림송 갤러리, 미니애폴리스
고대 치유의식과 현대 배아학을 병치하다

브루클린 기반의 타마르 에툰은 올해 프리즈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신화적인 접근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가다.
미국 정부의 과학 연구 지원 축소, 여성 건강 정책의 불균형이라는 시대적 조건 아래에서, 그는 고대 치유 의식과 현대 배아학을 충돌시키는 독특한 시각 실험을 선보인다.

특히 하버드대 배아학자 송용현과 공동 개발한 신작 시리즈는 신화 속 인물 릴리스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생식 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공포와 상징을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다.

현미경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형태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무한성’을 동시에 암시하며, 고대와 현대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타마르 에툰,  배아 콜라주 2 , 2025. 플렉시글라스에 UV 프린트, 손으로 염색한 원단, 돛, 거즈, 패드, 주사기 포장지, 바느질 핀, 실, 알루미늄 프레임, 49 x 49인치. 제공-작가 및 미니애폴리스 드림송
타마르 에툰,  배아 콜라주 2 , 2025. 플렉시글라스에 UV 프린트, 손으로 염색한 원단, 돛, 거즈, 패드, 주사기 포장지, 바느질 핀, 실, 알루미늄 프레임, 49 x 49인치. 제공-작가 및 미니애폴리스 드림송

 

투리야 애드킨스
한나 트라오레 갤러리, 뉴욕
‘아프로-퓨처신화’, 조상 기억의 재해석

에툰과 마찬가지로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투리야 애드킨스는 아프로퓨처리즘을 넘어선 개념인 ‘아프로-퓨처신화’를 제안한다.
그는 신화와 조상의 서사를 단순히 미학적으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축적된 기억의 층위가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내는지 탐구한다.

애드킨스의 작업은 시각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가 촘촘히 얽힌 팔림프세스트 구조를 띤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중첩시키며, 역사적 경험이 어떻게 반복되고 변형되는지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강렬한 감각으로 드러낸다.

Turiya Adkins, Soul Shrapnel , 2025. 제공-작가 및 Hannah Traore Gallery, 로스앤젤레스
Turiya Adkins, Soul Shrapnel , 2025. 제공-작가 및 Hannah Traore Gallery, 로스앤젤레스

 

아프리카누스 오코콘
오치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실크스크린과 코코넛 밀크, 그리고 매일 재구성되는 설치

프리즈 LA에서 오치(OCHI)는 갤러리의 새로운 방향성을 아프리카누스 오코콘을 통해 명확히 드러낸다.
프로비던스 출신의 그는 회화, 조각, 음악을 아우르는 멀티 장르 작가로, 아카이브 이미지를 기반으로 재료의 물성과 개념을 동시에 변주한다.

실크스크린, 오일, 코코넛 밀크로 제작된 이번 하이브리드 회화는 소각 과정을 거쳐 최종 형태가 결정된다.
전시 기간 동안 설치 작품이 매일 재구성되는 방식은 ‘이미지와 경험의 차이를 추적하는 작가’라는 그의 핵심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아프리카누스 오코콘,  'Puce Moment', 2025. 캔버스에 탄 자국, 유화, 실크스크린 잉크, 패널 위에 펼친 작품, 76.2 x 101.6cm. 작가 및 로스앤젤레스 OCHI 제공. 사진-스콧 알라리오
아프리카누스 오코콘,  'Puce Moment', 2025. 캔버스에 탄 자국, 유화, 실크스크린 잉크, 패널 위에 펼친 작품, 76.2 x 101.6cm. 작가 및 로스앤젤레스 OCHI 제공. 사진-스콧 알라리오

 

자말 사이러스
패트론 갤러리, 시카고
데님과 악기로 탐구하는 정체성의 층위

뉴올리언스 음악 전통부터 흑인 역사, 제국주의 권력 구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구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자말 사이러스는 재료를 역사의 기억 창고로 다룬다.
데님, 콘크리트, 바이닐 레코드, 악기 등 재료가 지닌 시간의 흔적을 조각과 아상블라주로 엮어낸다.

패트론의 단독 전시에서는 데님을 기반으로 한 조형 작품과 직접 제작한 새로운 악기 시리즈가 선보인다.
소리, 이미지, 물질이 서로 충돌하며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구성이다.

자말 사이러스,  '혼 빔 성찬', 2025. 톱질대, 맞춤 제작 강철 및 목재 훈연기, 테너 색소폰, 거즈, 미시시피 강 진흙, 모자반, 철도 못, 경목 숯, 체리나무와 히코리나무 조각, 미시시피 강물 잔여물, 알로에, 트윙클 실버 광택제, 우드, 유향과 몰약, 90.8 x 106.7 x 65.4cm. 작가 및 후원사 제공, 로스앤젤레스
자말 사이러스,  '혼 빔 성찬', 2025. 톱질대, 맞춤 제작 강철 및 목재 훈연기, 테너 색소폰, 거즈, 미시시피 강 진흙, 모자반, 철도 못, 경목 숯, 체리나무와 히코리나무 조각, 미시시피 강물 잔여물, 알로에, 트윙클 실버 광택제, 우드, 유향과 몰약, 90.8 x 106.7 x 65.4cm. 작가 및 후원사 제공, 로스앤젤레스

 

에밀리 바커
칼리 패커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장애의 현실과 미적 디자인의 충돌을 조명하다

2025년 구겐하임 펠로십 수혜자 에밀리 바커는 장애와 디자인의 관계를 날카로운 감각으로 파고드는 작가다.
프랭크푸르트 현대미술관과 애크런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그는 열성형 PETG 플라스틱을 주요 재료로 삼아 대형 건축 조각을 제작한다.

이번 프리즈에서 소개되는 신작은 2022년 휘트니 비엔날레 <키친>, 2023년 <케어의 환상>에 이어, ‘미적 디자인이 장애인을 어떻게 소외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바커의 작업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공간과 신체 사이의 구조적 폭력을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프리즈 LA, 새로운 미술적 감수성의 축적
2026년 프리즈 로스앤젤레스 Focus 섹션은 단순히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무대가 아니다.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정치적, 사회적, 기술적 질문들이 어떻게 새로운 조형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적 현장이다.

치유, 기억, 정체성, 몸, 재료의 변화, 시스템 비판 등 다양한 흐름이 관객 앞에서 구체적 형태로 드러나는 올해의 라인업은 미술이 다시 본질적 질문으로 회귀하는 흐름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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