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술 시장에서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들의 재평가 본격화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세계 미술시장이 다시 한 번 프리다 칼로의 힘을 확인했다.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칼로의 1940년작 ‘엘 수에뇨(La cama)’가 수수료 포함 5,470만 달러에 낙찰되며 여성 예술가 작품 경매가의 새 기록을 세웠다. 이 가격은 1980년 마지막 낙찰가 5만 1천 달러에서 무려 107,155퍼센트나 상승한 수치다.

이번 경매는 시작부터 치열했다. 2,200만 달러에서 출발한 가격은 두 명의 전화 입찰자가 맞붙으며 5분도 채 되지 않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낙찰자는 미술관의 라틴아메리카 미술 책임자인 안나 디 스타시로, 그녀는 고객을 대신해 4,700만 달러에 마지막 응찰을 올렸다. 수수료를 포함한 최종 낙찰가는 5,470만 달러로 확정됐다.

프리다 칼로, 엘 수에뇨(라 카마) (1940). 소더비 제공.
프리다 칼로, 엘 수에뇨(라 카마) (1940). 소더비 제공.

이번 가격은 2014년 조지아 오키프의 ‘짐슨 위드/화이트 플라워 1’이 기록한 4,440만 달러를 뛰어넘는 새로운 여성 작가 최고가다.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현재 가치에서도 그 격차는 크지 않지만, 현대 시장에서 여성 예술가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세계 미술 시장은 오랫동안 남성 작가 중심으로 가격 체계가 형성돼 왔다. 남성 작가의 낙찰 기록은 2017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세운 4억 5,030만 달러이며, 1억 달러 이상에 낙찰된 남성 작가의 작품도 20점이 넘는다.
이번 프리다 칼로의 기록은 이러한 격차 속에서도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에 대한 재평가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 수에뇨’는 칼로가 상징과 초현실적 이미지로 감정의 세계를 드러내던 전환기에 제작된 대표작이다. 하늘에 떠 있는 네 기둥 침대, 해골 머리를 한 인물, 꽃다발을 든 다이너마이트 묶음 등 칼로 특유의 상징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소더비는 이 작품을 “칼로가 자신의 내면을 상징적 정밀도로 응축한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다 칼로, 엘 수에뇨(라 카마) (1940). 소더비 제공
프리다 칼로, 엘 수에뇨(라 카마) (1940). 소더비 제공

이번 작품은 초현실주의 대가 셀마 에르테군의 개인 컬렉션에서 출품된 80여 점 중 하나였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 거장들의 작품이 함께 경매에 등장했고, 컬렉션 가치는 7천만 달러에서 1억 5백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이번 경매는 발렌타인 휴고, 케이 세이지, 도로시아 태닝, 레메디오스 바로 등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도 동반 상승세를 보이며,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군 전체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자리였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해외 경매에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멕시코의 엄격한 문화재 수출 규제로 인해 고가 작품이 해외로 반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멕시코 외 지역에서 거래되는 칼로의 작품은 희소성과 상징성이 더해져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칼로는 생전에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명성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미술사에서 독보적 상징성을 갖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2026년에는 휴스턴 미술관과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칼로의 영향력을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도로시아 태닝, 갑작스러운 기쁨이 있는 실내 (1951). 소더비 경매 제공.
도로시아 태닝, 갑작스러운 기쁨이 있는 실내 (1951). 소더비 경매 제공.

이번 경매 결과는 이러한 국제적 재조명 흐름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이번 프리다 칼로 기록 경신은 단순히 하나의 낙찰 소식이 아니다.
세계 미술 시장이 여성 예술가, 특히 초현실주의 여성 미술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며 시장 구조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칼로의 작품이 가진 감정의 밀도, 상징의 깊이,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적 영향력이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정당한 평가를 받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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