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미 작가 12번째 개인전 'Sunflower Codes', 서초문화예술회관 나비홀에서 개최
[아트코리아방송 = 황성욱 기자] 해바라기를 오랫동안 그려 온 왕영미 작가가 열두 번째 개인전 'Sunflower Codes'로 관객을 다시 초대한다. 2025년 12월 1일부터 5일까지 서초문화예술회관 나비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대표 연작 'Fully Grown' 10점과 그 이후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작 10점으로 구성되어 해바라기 회화가 쌓아 올린 시간과 그 안에서 진화해 온 색채의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차가운 계절, 유리창에 서린 김 위를 손으로 쓱 문지르며 해바라기 모양을 그려 넣은 듯한 이미지가 화면 중앙에 있다. 관객은 마치 그 손자국 사이로 전시장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선을 떠올리게 된다. 김이 걷힌 자리에는 왕영미의 신작을 연상시키는 해바라기 실루엣이 부유하고, 그 주변을 감싸는 녹색의 깊은 그라데이션은 안과 밖, 현실과 회화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이 포스터는 “유리창 너머로 먼저 엿보는 전시”라는 설정을 통해, 관객이 아직 만나지 못한 해바라기의 새로운 얼굴에 대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왕영미의 해바라기는 이미 미술계와 시장에서 눈여겨보는 연작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1월에는 서울옥션에 작품이 출품되어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두터운 물감의 질감과 강렬한 색의 파동, 해바라기 형상 속에 스며든 감정의 깊이가 컬렉터와 관람객의 주목을 끌었다는 평가다. 이번 개인전은 그런 외부의 관심을 확인하는 자리를 넘어, 작가가 그 관심의 출발점이 된 회화적 에너지와 내면의 질문을 어떻게 더 멀리 밀어붙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Fully Grown〉 시리즈는 왕영미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연작이다. 해바라기가 가장 크게 피어 오른 절정의 순간을 담되, 그 안에 이미 시들어갈 예감과 시간의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고 있는 장면들이 특징이다. 두텁게 올려진 물감, 화면을 휘감는 격렬한 붓질, 서로 부딪히며 번지는 색의 파동은 생의 정점에서 느끼는 긴장과 떨림을 시각적으로 전한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10점의 〈Fully Grown〉 작품들은 작가가 해바라기를 통해 삶의 의지와 존재의 무게를 어떻게 포착해 왔는지 복기하게 해 준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제목 〈Sunflower Codes〉를 붙인 신작 10점이다. 작가는 “기존의 〈Fully Grown〉이 형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면, 이번 신작은 색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해바라기의 구조와 실루엣이 화면의 중심을 잡았다면, 이제는 그 구조 위에서 진동하는 색의 층이 작품의 핵심이 된다. 작업 과정에서도 감정과 기분이 곧바로 색의 선택으로 연결되었고, 그때그때의 정서가 화면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했다고 설명한다.
왕영미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가 하고 싶고,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나에게는 정답”이라고 말한다. 〈Sunflower Codes〉의 신작은 이 고백을 색채 언어로 옮겨 적은 회화라고 볼 수 있다. 화면 위의 색들은 작가 개인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들의 바람을 색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의도 아래 구성되어 있다. 해바라기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넘어, 각자가 품고 있는 두려움과 기대, 상실과 재시작의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포스터의 컨셉처럼 김이 걷힌 자리로 빛이 스며들듯, 작가는 해바라기라는 장치를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진 소망과 기억을 부드럽게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창문에 남은 손자국은 작가의 손이자 관람자의 손이며, 동시에 서로의 감정이 만나는 접점으로 읽힌다.
왕영미는 〈피어나다〉, 〈Fully Grown〉, 〈Dionysus Flower〉 등 해바라기를 축으로 한 연작을 통해 삶과 감정, 존재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던져 온 작가다. 이번 12번째 개인전 〈Sunflower Codes〉는 그동안 축적해 온 해바라기 회화의 역사와 최근의 색채 실험을 한자리에서 조망하게 해 주는 자리이자, 서울옥션을 통해 확인된 관심과 호평이 앞으로의 작업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전시는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201, 양재역 9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서초문화예술회관 나비홀에서 2025년 12월 1일(월)부터 12월 5일(금)까지 진행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다.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유리창에 그려진 해바라기 틈으로 미리 엿보는 듯한 이 전시는 색으로 기록된 소망의 코드들을 따라가며 각자의 삶과 길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