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더비·현대미술 경매 기록 모두 갈아치우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뉴욕의 가을 경매 시즌이 또 한 번 역사를 새로 썼다. 20세기 미술의 거장이자 빈 분리파의 상징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대표작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1914–16)’이 11월 소더비(Sotheby’s) 저녁 경매에서 2억 3,640만 달러(약 3조 2,000억 원)에 낙찰되며 클림트 최고의 경매가, 소더비 역사상 최고가, 그리고 경매 시장 전체에서 ‘현대 미술 작품 최고가’라는 세 가지 대기록을 동시에 세웠다.

이 그림은 생전에 평생 미술 후원자로 불리던 '레너드 로더(Leonard A. Lauder)'의 개인 컬렉션에서 출품된 작품 중 하나로, 그가 소장하던 세 점의 클림트 초상화 중 가장 대표적이자 가장 귀중한 작품으로 꼽혀왔다. 로더는 지난 6월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사후 진행된 이번 경매에서 총 24점의 컬렉션이 시장에 나왔다.

구스타프 클림트,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1914–16), 부분. 사진-소더비 뉴욕 제공.
구스타프 클림트,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1914–16), 부분. 사진-소더비 뉴욕 제공.

소더비 역사상 가장 뜨거운 20분
경매는 단 20분 동안 불꽃처럼 펼쳐졌다. 시작가는 1억 3,000만 달러. 이후 200만 달러씩 꾸준히 올라가다 경쟁 구도가 좁혀지면서 1억 7,000만 달러 부근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러나 소더비 측 데이비드 갤퍼린의 깜짝 입찰이 현장의 공기를 흔들며 다시 경합이 붙었다.

결국, 치열한 ‘3자 경쟁’ 끝에 작품은 2억 달러를 넘어섰고, 최종 낙찰가는 2억 500만 달러. 여기에 수수료가 더해져 최종 기록은 2억 3,640만 달러로 확정됐다. 경매장의 박수와 환호는 이날 밤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로더 컬렉션의 위상과 소더비의 리스크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소더비는 이번 경매에 앞서 로더 컬렉션에 대해 최대 4억 달러 보장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3점의 클림트 초상화를 포함한 주요 작품에 대한 ‘취소 불가능 입찰(이른바 3자 보증)’ 확보가 쉽지 않아, 경매 직전까지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매 당일 오전까지 온라인 카탈로그에는 보증자가 없다는 표시가 유지되었으나, 이후 대부분의 주요 작품이 보증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소더비 역시 이번 경매에 사활을 걸었던 셈이다.

110년 전 클림트의 손끝에서 태어난 비엔나의 초상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은 비엔나 상류층을 대표하던 레더러 가문의 딸을 그린 작품이다. 같은 인물의 어머니 세레나 레더러의 초상화(1899)는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에 낙찰된 작품은:
동양적 문양과 중국 황실 도상을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분위기
클림트 후기의 황금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보다 부드럽고 환상적인 표현
‘클림트 여성 초상화 3부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작품
특히 이 작품은 클림트가 1918년 사망하기 4년 전 제작된 중요한 후기작으로도 꼽힌다.

로더는 1985년 뉴욕 사바르스키 갤러리에서 비공개 가격으로 작품을 구입했고, 이후 수차례 박물관 전시에 익명으로 대여해왔다. ‘클림트의 여인들’ 전시(2000), 노이에 갤러리 전시(2016–17) 등 대표적 전시에도 출품됐다.

클림트 경매 기록의 역사도 새로 다시 쓰였다
클림트는 생전부터 세기말 빈의 상징이자 유럽 상징주의의 대표자로 평가받았다. 그의 경매 기록은 다음과 같다.

2023년 소더비 런던: ‘부채를 든 여인’ – 8,530만 파운드(약 1억 880만 달러)
2016년(개인 거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2세’ – 1억 5,000만 달러
2012년(개인 거래): ‘물뱀 2세’ – 약 1억 8,700만 달러
2003년 경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1세’ – 1억 3,500만 달러
2025년 소더비 뉴욕: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 – 2억 3,640만 달러(신기록)

클림트, 왜 이렇게 비싼가?
그의 작품 가치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오스트리아 모더니즘과 빈 분리파의 정점
상징주의·에로티시즘·황금빛 패턴이 결합된 독창적 회화 언어
여성 초상화는 특히 ‘클림트 최고가 라인’
드물게 시장에 등장하는 희소성
아시아·중동 컬렉터층의 강세

그 중에서도 이번 작품은 ‘클림트 후기 최고작’이자 ‘레너드 로더 컬렉션의 백미’라는 점에서 더욱 상징적이다.

예술 시장은 또 한 번 새 이정표를 맞았다
70대 컬렉터부터 20대 젊은 자본까지 전 세계 초고가 컬렉터들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번 기록은 최근 글로벌 예술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확고한 ‘블루칩 신뢰’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뉴욕 소더비 경매는 이날의 결과로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미술 경매사’라는 위상을 재확인시켰고, 클림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유럽 거장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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