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전-사물의 기억으로 삶을 비추다
[아트코리아방송 = 지유영 기자] 일상의 사소한 사물들이 한 사람의 생애와 사회의 욕망을 말할 수 있을까. 조각가 양용방은 이 오래된 질문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파고든 작가다. 제주에서 생활과 가까운 물건들을 오브제로 삼아온 그는, 2025년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작가로 낙점되며 개인전 ‘MY LIFE’를 11월 26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수십 년간 탐구해온 ‘사물과 인간의 협력’이라는 테마를 확장하는 자리다. 버려진 식기, 주방도구, 산업폐기물, 사용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생활의 도구들이 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조각적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사물들은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풍자로, 때로는 인간의 고단한 생애를 응시하는 은유의 형상으로 변모한다.
양용방의 작품 세계는 ‘새롭게 쓴 사물의 전기(傳記)’에 가깝다.
그는 기존 조각의 권위를 넘어, 우리가 매일 마주하던 사물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
숟가락, 냄비, 주방도구, 산업폐기물—그 일상의 잔재들은 그의 작업 안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감을 얻는다.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사물 자체가 지닌 기억과 시간성을 길어 올려 새로운 서사로 전환하는 조형 행위다.
그는 “사물에는 인간의 삶이 묻어 있다.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고, 버려지는 순간에도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양용방의 작업은 그래서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물 하나하나에는 인간 삶의 무게와 반복되는 일상의 진실이 응축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이 함께 소개된다. 각각의 작품은 일상의 조각들로 쓰인 사물들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나이와 같은 ‘숟가락 65개’가 모여 애벌레 형태를 만들었다.
“밥벌레처럼 살아온 생애”를 은유하며,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 ‘밥’이라는 생존의 원초적 조건 위에서 이어져 왔음을 상기시킨다.
명품백의 형상을 한 폐기물 오브제.
명품 소비를 향한 욕망의 구조를 뒤집으며, 자본주의가 부여한 ‘가치’의 허상을 유머와 풍자로 드러낸다.
프라이팬 위에 컴퓨터, 유튜브, 비트코인 등 현대의 욕망을 상징하는 오브제를 올려놓은 작품.
“오늘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좇으며 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각적 우화다.
이 모든 작품에서 양용방은 사물을 단순한 재료가 아닌 ‘인간의 또 다른 얼굴’로 다룬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잔잔한 위트를 잃지 않는다.
양용방에게 사물은 자신을 닮은 ‘또 하나의 생명체’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손에 쥐고 살았던 도구들은, 그의 손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성과 시대의 욕망을 동시에 말하는 조각적 언어가 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두고 “사물은 우리가 살아낸 시간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을 마주하면, 어느새 우리는 사물 너머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MY LIFE'는 그래서 ‘사물의 조각’이 아니라 ‘삶의 조각’을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제주특별자치도와 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가 공동 주최하는 ‘2025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전’의 일환이다. 올해 여덟 번째 전시로, 제주 출신 작가들이 서울에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펼치는 의미 있는 무대다.
사물, 기억, 인간의 삶을 이어 붙이는 양용방의 조각들은 서울의 관람객들에게 ‘일상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