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붉은 한라산 아래 ‘제주 사람’의 얼굴이 서다

[아트코리아방송 = 황성욱 기자]  제주시 연북로 갤러리 애플에서 열린 오승익 작가의 개인전,  '한라산 그리고 제주사람 展, 벵찬이 삼춘' 이 11월 16일 오후 4시 오프닝을 열고 문을 열었다. 일요일 오후였지만 전시장에는 지역 예술인과 교육계 인사, 시민들까지 약 100여 명이 모여 오랜 시간 한라산을 그려온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함께 지켜봤다. 붐비는 인파와 인사말,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는 관람객들로 개막식 현장은 말 그대로 ‘성황’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오승익 개인전,  '한라산 그리고 제주사람 展, 벵찬이 삼춘' 전시포스터
오승익 개인전,  '한라산 그리고 제주사람 展, 벵찬이 삼춘' 전시포스터

이번 전시는 제목 그대로 한라산 연작과 제주 인물 그림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나는 자리다. 오랜시간 한라산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온 작가가 이제 그 산을 살아온 얼굴들로 시선을 넓혀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한쪽 벽면에는 붉은 기운이 짙게 밴 한라산 풍경들이, 다른 쪽에는 제주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물의 초상이 걸려 있어, 자연과 인간, 기억과 현재가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만든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이날 오프닝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인물은 이번 인물 연작의 모델인 '서예가 현병찬'이었다. 1942년생으로, 제주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서예가인 그는 전시 제목에 직접 이름이 들어간 ‘현병찬’ 연작의 주인공이다. 개막식에서 현병찬은 많은 관람객 앞에 서서, 후배 화가가 자신을 주제로 삼은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게 된 데 대한 감사와, 제주에서 함께 걸어온 시간에 대한 소회를 짧게 전했다. ‘그림 속 인물’이 전시장 한가운데에 실제로 서 있는 장면은, 이 전시가 단순한 초상전이 아니라 제주 한 세대의 삶을 기록하는 자리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현병찬 서예가의 축사
현병찬 서예가의 축사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 톤이 강하게 살아 있는 한라산 연작이다. 화면은 몇 개의 수평 구역으로 나뉘고, 그 위에 제주 특유의 무덤, 나무, 돌무더기 같은 형상이 층층이 배치되어 있다. 오래 쌓아 올린 물감층과 긁힌 자국들이 겹치면서, 이 산은 풍경이 아니라 제주4·3을 비롯한 섬의 비극과 작가 개인의 기억을 동시에 품은 장소로 읽힌다. 강렬한 붉은색은 폭발하듯 튀어나오기보다는 눌러놓은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빛에 가깝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과 상흔 같은 자국들이 그 감정의 흔적을 따라가게 만든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그자리 한라산_붉은 한라산, 259.1x193.9cm, Acrylic+Mixed media, 2025
그자리 한라산_붉은 한라산, 259.1x193.9cm, Acrylic+Mixed media, 2025

이어지는 공간에는 ‘제주 사람’에 초점을 맞춘 인물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그중에서도 현병찬을 그린 5점의 초상은 전시의 특별한 작업이다. 교사, 서예가, 문화활동가로 살아온 그의 시간이 화면 속에 담겨 있다. 붓을 드는 손, 글씨에 집중한 눈빛 등이 과장되지 않은 색과 형태로 그려져, 한 사람의 이력이자 동시에 “제주다운 삶”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한라산이 제주의 상처와 시간을 품은 풍경이라면, 현병찬을 비롯한 인물들은 그 시간을 관통해 온 얼굴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한라산 그리고 제주사람 展〉은 오승익이 오랫동안 파고든 한라산 회화 위에, 구체적인 사람들의 얼굴을 겹쳐 올리는 시도다. 산에서 사람으로, 풍경에서 인물로 확장된 이번 전시는, 제주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점점 더 구체적인 삶과 이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 한라산과 제주인의 얼굴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비추는 이 전시는, 한라산의 기억과 제주 사람의 내일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자리로 남는다.

전시 개막식 전경
전시 개막식 전경
전시 개막식 전경
전시 개막식 전경
오승익 개인전 '한라산 그리고 제주사람 展' 개막-오승익 작가 제공
오승익 개인전 '한라산 그리고 제주사람 展' 개막-오승익 작가 제공

전시는 11월 23일까지 갤러리애플에서 이어지며, 20일(목)은 휴관이다. 한라산의 붉은 기억과 제주 사람이 지켜 온 삶의 얼굴을 한 자리에서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번 전시는 올가을 제주에서 꼭 들러볼 만한 현장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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