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 Ⅱ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포착한다고 하는 것이‘개념을 형성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클래스(class)의 제대상이라는 개념에서 같은 징표를 가진 제대상이 갖추고 있는 것을 정리하게 되고, 그것과 완전히 유비적(類比的)으로 시간에서 변화되는 일련의 제현상이라는 개념은 모든 단계에 있어서 동일한 것을 정리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도 명확해 진다. 시간이 어느 정도 바뀌어도 다른 것과 관계되지 않고 동일하게 계속하는 것을 실체라고 하며, 변화하는 제량(諸良) 사이의 불변한 관계를 제량의 결합법칙이라고
[박명인 미학산책] 개념과 법칙Ⅰ직관적 인식의 분석이 직관적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계기가 결코 독립적으로 자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반 계기 사이에는 하나의 논점에 대하여 반론을 예상하고 주장하는 의견ㆍ학설이 구체적인 전체로 특정한 면이나 일정한 내용을 추출하는 독특한 관계가 있어서 직관적 현실의 형식도 본질적으로는 고립된 것만 떼어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정한 개별적인 지점과 순간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것도 결코 단순히 얽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적 내용의 총체를 지시하여 다양한 경험과 결부되면서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Ⅷ명제함수의 정식(a)을 사용하고, 개념문제를 포착하는 방법에서 생기는 이론적 대립의 모든 것이 이 대립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감각론적인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개념의 기능도, 대상의 기능도, 이 함수에 대입되는 변수의 값에 의해 단순하게 병렬함으로써 포착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 거기에서는 b가 마치 그것 자체 하나의 a인 것 같이, 혹은, a1+a2 +a3…와 같은 a가 단순한 총화인 것 같이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의 사고방식은 명제함수에 있어서 결합되고 있는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Ⅶ헬름홀츠의 지각이론에 있어서, 또한 그의 인식이론의 구축에 있어서 인과기능이 이중의 기능, 근본적으로 둘로 분열된 기능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밝혀진다. 인과기능은 자연의 개념적 파악의 가능성 조건이라고 하는 경험적 관찰의 다양성을 엄밀한 통일을 가진 질서로 통합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경험적 대상의 개념에 다다르는 것도, 인과기능에 의해 처음으로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에 인과적 사고의 형식에 의해 완전히 별도의 길로 밀어 버린다. 즉, 현상의 순수한 연관을 포착하는 것이 아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Ⅵ비로소 감각적 세계의 근저에 하나의 이데아적 세계, 즉 의미와 순수이론의 세계가 구축되게 된다. 또한 의미와 순수이론의 형성체를 위해서만 각각의 현상이 경험에 의해 필요한 연관 법칙이 정식화되는 것이다. 이 정식화를 시작으로 인식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대상을 일의적인 질서로 입수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순수지식의 영역으로 돌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각의 내실을 근저로부터 개조하지 않으면 안되고, 지각의 내실이 참된 의미로 초월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미상의 초월이 존재와의 초월
타당성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타당성 계기나 가능성이 단순한 존재의 레벨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복합되어지거나, 상호 포섭하거나 하는 것이다. 대상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대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통일체가 기능적 통일체로서 점진적으로 구축된다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 통일체는 일련의 제규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제규정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일은 없다. 즉, 그것이 얼마간의 개별항목이 되거나, 혹은 그 계열의 최종항목이 되어서 계열을 끝내 버리지도 않는다. 이 통일체야말로 항목에서 항목으로의 진행을 규정하고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Ⅳ과학은 자신의 수법에 비판적 통찰을 가할 수 있게 되면 과학의 대상과 직관적 지각 또는 직관의 대상과 마찬가지 유사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일체 털어 내게 된다. 과학은 과학의 대상이 직관의 대상에 일관해서 관계되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전자가 결코 후자에 환원될 수 없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한 환원은 모두 과학적 사고가 특수한 작업을 후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나 세계연관의 개념적 파악을 소여의 단순한 이중화로 변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을 승인하는 것은 물론 동시에 하나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Ⅲ의식이란 가장 고유한 본질에 비추어 보면 ‘나의 그림자를 뛰어 넘는다’라는 것이라고. 그러나 립스는 이 초기에 객관적ㆍ조직적ㆍ학문적으로 기록한 것을 곧 정정한다. 그는 이런 내용이 단지 메타포적인 성격으로 밖에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도 의식내용이 무엇인가 대상적인 것을 향하고 있고, 이 대상적인 것을 표출하는 사실은 이 시점에서 립스가 강조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멀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표시한다는 것은 결코 제의하는 특수한 일례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일한다고 하는 일반적
개념과 대상 Ⅱ‘하나의 대상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에 의해, 제표상에 어떤 성질이 주어질 것인가, 제표상이 어떤 것인가 탐구해 보면 이 관계를 맺는 제표상을 결합하는 방법은 필연적이다. 그것을 하나의 규칙에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표상의 시간관계가 있는 질서가 필연적인 것에 의해 객관적 의미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면, 이후 중심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적 객관이 아니라 객관적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물자체’로서의 대상의 성상(性狀)이 아니다. 하나의 대상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념과 대상의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표현을 원리적으로 변혁시킨 방법적 의미는 『순수이성비판』의 가장 중요한 성과이다. 이 전환은 칸트가 이 점에서 일반적 논리학으로부터 초월론적 논리학으로 이행한 것에서 결정적인 가능성이 열렸다. 이 이행에 의해 개념론은 처음으로 전통적 수법을 근거로 점차 깊게 빠져 있었던 경직상태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개념의 활동은 분석적·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출산적·구축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즉, 이미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 자체로 존립하고 있는 절대적 현실이 퇴색한 모상(模像)이 아니고, 경
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Ⅴ직관적 개념으로부터 과학적 개념으로 이행할 때 분명히 이러한 측정기준의 교환이 필요한 것은, 전과학적(前科學的)개념에 있어서 측정할 수 없다는 것, 즉 전과학적 개념이 아직 관계를 맺어 표적사고 일반이 특정한 근본규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결코 증거로 할 수는 없다. 이것에 대해 브로토와 웰치의 이론은 적어도 전과학적이라는 것도 과학적 개념에 관해서는 그 주장을 지극히 중요한, 아니 결정적인 점에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표상상과 기억상과의 단순한 융합으로부터 생기게 하고 있다. 이 이론에 있어서의
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Ⅳ그러나 우리들이 이전에 숙고한 것을 상기해 본다면 표출이라는 사고방식과 여기에서 브로토와 웰치가 주장하고 있는 사고방식의 대립이 바로 위의 인용문에 의해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것도 일관해서 논박해야 했던 것은 어떤 표상의 심볼적인 내실이 어떤 표상에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그 표상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 표상의 구별 가능한 실재적 부분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바로 그 가정 때문이다. 의미한다라는 것과 현실 존재한다라는 것은 양자가 하나의 표상이 두 개의 구성으로 나타낼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Ⅲ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개념문제의 고르디아스(Gordias)의 매듭이 풀어지지 않고 끓어진 것 뿐이다. 따라서 각각의 인상의 다양성과 분산상태로부터 뚜렷한 하나의 전체적 표상으로부터 달아나도 그것이 정말로 이러한 다양성이나 분산상태로부터의 구출이 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다양성을 포기하기를 바라고 있던지 아니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형성의 의미는 개념이 형성되는 것에 의해 다수의 특수한 미궁을 방황하고 있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참된
[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Ⅱ예전에 하려고 했던 추상이론비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론(異論)을 제기한 적이 있다. 즉, 이 비판은 최고도로 발전한 개념, 수학이나 수학적 물리학의 제반 개념으로부터 출발할 경우에는 확실히 맞을 지도 모르지만, 과학적 인식 앞 단계에 눈을 돌리면 과학의 목표로는 완전히 떨어져, 아직 이론에 의해 바꾸거나 이론을 지우거나 하지 않고는 자연적인 세계상에 있어서 이미 보여지는 개념형성을 근저에 설치하면 즉시 무효가 된다는 이론(異論)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자연적 세계상에 보여지는 개
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Ⅰ 개념을 순수하게 재생산적인 성향에 의해 설명하고, 그러한 성향으로 제한하려는 개념이론은 모두 필연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다. 직관이나 표시 기능의 영역에 있어서는 이러한 제한이 성립되지 않는 사실이 모두 입증된 것이다. 이미 이 영역에서 경험적 지각이나, 경험적 인식 일반에 관한 이론을 총괄하기에 도처에서 출산적 구상력 기능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개념에 있어서 산출적 구상력의 활동은 훨씬 강하게 증대하고 있다. 따라서 개념을 재생물의 총화, 즉 단순한 기억상의 통합으로 바꾸어 버
[박명인의 미학산책] 창조와 수용 Ⅳ이것은 실제 착상에 이르는 전 단계를 두 가지로 설정하고, 구상의 현실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지만, 그 전 단계는 결국 창조의 조건과 같은 것이며, 창조의 실태에 육박했다고 하기에는 좀 멀기 때문에 창조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간의 창조활동에 관한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신의 창조를 모델로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전제로 하는 사고방식이다. 신의 창조의 특색으로서 일반적으로 허무로부터의 창조라는 무전제적인 창조다. 인간은 신의 창
[박명인의 미학산책] 창조와 수용 Ⅲ예술개념에 있어서 창조는 모방과 대비된다. 창조의 반대개념으로는 모방이지만 그렇다고 예술론의 고전적 이론으로서의 자연모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자연모방에 있어서 창조적인 것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충실한 자연모방과 비교해서 공상적인 형상을 그리는 것은 보다 창조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연모방설을 공상 면으로부터 수정하는 움직임은 이미 고대 말기에 있었다. 이 경향에 대해서는 필로스트라토스(Philostratos, 2-3C) 이름으로 거론되는 것이 통례이다.〈Cf,T
보다 높은 가치실현을 지향하고 소여(所與)의 현실에 제의하고, 그것을 변화해가는 역동적인 현상(現象). 그 때 창조(creativity)란 이 지향성을 보이는 현상일반을 말한다. 따라서 좁은 의미로 창조는 산출활동(産出活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산출 주체인 사람도 그 소산도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예술은 창작으로부터 감상자에게 이르는 모든 위상이 창조성에 의해 채색된 전형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산출은 물론 그 작품 자체도 창조적이다. 예술작품은 단지 창조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박명인의 미학산책] 창조와 수용 Ⅰ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더니즘의 원점에서 생각된 것이 ‘미와 예술의 자율성’을 설명한 칸트의 미학이었다. 칸트는 또 당시의 포멀리스틱(formalistic)한 고전주의 미학에 대하여 예술창조의 원리를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이래 ‘천재’라는 예술가가 자유로운 창조적 개성에서 찾아낸 것이며 거기에 바로 칸트미학의 근대성이 특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음과 같이 이 명제를 보충하고 있다.‘천공(天空)을 날아다니는 천재도 방자해질 때 좋은 취미가 이것을 조교
[박명인의 미학산책] 미적개념-美的槪念 Ⅳ미를 정의하거나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하는데 복잡하게 휘감기기 쉬운 것은 원래 형용사인 것에서 유래한다. 명사는 대체로 일정한 물체를 가리키고 있어서 일의적인 명료성을 가지고 있지만, 형용사는 각양각색으로 대상에 분산되어 인정을 받는 속성이 있다. 특히 ‘아름다운’과 같은 형용사는 주관적 판단의 계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제1 성질이나 제2 성질이라는 객관적 성질과는 다르다. 또한 이 판단은 대상의 제1 성질이나 제2 성질을 근거로 행해진다. 거기에서 정확히 제2 성질이 제1 성질을 근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