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Ⅵ
비로소 감각적 세계의 근저에 하나의 이데아적 세계, 즉 의미와 순수이론의 세계가 구축되게 된다. 또한 의미와 순수이론의 형성체를 위해서만 각각의 현상이 경험에 의해 필요한 연관 법칙이 정식화되는 것이다. 이 정식화를 시작으로 인식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대상을 일의적인 질서로 입수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순수지식의 영역으로 돌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지각의 내실을 근저로부터 개조하지 않으면 안되고, 지각의 내실이 참된 의미로 초월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미상의 초월이 존재와의 초월이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의미상의 초월은 존재상의 초월과는 완전히 별도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 이행은 의미에 있어서의 이행이며 존재에 있어서의 이행은 아니다. 이 이행은 존재 내부의 제 관계를 지배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기본적 관계로는 포착할 수 없고 충분히 설명도 될 수 없다.
사념(思念)하는 심볼적 관계, 즉 제현상이 대상에 관계되고, 대상을 이 관계 가운데에서 표현하는 방법은 그것을 인과관계의 특수 예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근거율(根據律)’에 짜맞추어 종속시키려 하면 잘못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어떤 특수한 차이에 관한 통찰을 곤란하게 해서 순수한 의미 관계를 인과관계에 끌어 들이고, 인과관계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호라는 개념과 그 사용방법에 잠재하고 있는 다의성이다. 후설(Edmund Husserl)은 참으로 심볼적인 기호, 유의미적인 기호와 단순한 지시적 기호와는 원리적으로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엄격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연적인 존재나 사건의 권내(圈內)에서도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얼마간의 항상적인 경험적 관계, 특히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의해 다른 사물이나 사건에 결부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물이나 사건의 기호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연기는 불의, 천둥벼락은 번개의 기호가 된다. 그러나 후설이 강조하고 있는 이러한 기호는 아무 것도 표현할 수 없고 그것들의 기호가 지시기능을 행하면 같은 식으로 얼마간의 의미기능을 해내고 있을 경우는 다르지만 ‘의미한다고 하는 것은, 지시라는 의미에서 기호로서의 본연의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기호의 기능을 초차적(初次的)으로 보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얼마간의 종적(種的)인 고찰의 관점에서, 특히 그것을 처음부터 자연과학적 개념형성으로 보게 되면 근본적 차이가 지워져 버리는 위험이 되풀이해 생긴다. 자연과학적인 개념형성은 인과적 사고의 규범과 지배와 함께 마지못해서 자신이 포착하는 모든 문제를 이른바 인과성 언어로 번역하고, 일반적으로 이렇게 번역함으로써 처음으로 문제를 이해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번역의 과정은 헬름홀츠(Helmholtz)의 인식이론에 있어서 특히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모든 현대 물리학자 중에서도 헬름홀츠는 수학적 물리학의 제개념이 실재적 대상으로 유사하다는 요구를 내걸어서는 안되고, 이 대상의 기호로 밖에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아마 가장 엄격하게 설득했다. 그는 이 견해를 이런 식으로 기초를 확고히 했다. 인간의 모든 감각은 외적 원인에 의해 모든 기관 안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며 이러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작용되는 기관(器官)에 본질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우리들의 감각의 질이 그것을 야기한 외적작용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주는 한, 그것은 외적작용의 기호로 간주될 수 있지만, 모상(模像)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이같은 것도 상에서 모사되는 대상과의 무엇인가 유사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조상(彫像)에는 형의 유사성이, 소묘에는 시야(視野)에서의 원근법적 투영 유사성이, 색채화에서는 더욱 색의 유사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기호는 그것이 기호가 되는 어떠한 종류의 유사성도 갖추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양자의 관계는 같은 대상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기호를 불러 일으킨다고 하는 것, 따라서 부등(不等)한 기호는 항상 부등한 활동에 대응하고 있는 것에 한정된다. 그렇지만 기호개념의 이러한 사용방법에 있어서는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알 수 없는 사이에 고찰양식을 무매개로 교체시킨다. 즉, 일방적으로 기호는 순수하게 직시적(直示的)인 기능을 행하고 있어서 어떤 대상을 지시하고, 지향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무엇인가 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대상의 움직임에 의해 야기되는 하나의 규정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각이 영향을 미치고, 표시하는 지향적 대상이 실재적인 물질(어떠한 방법으로 지각의 배후에 숨겨져 있어서 단지 간접적인 결과로 추론에 의해서만 인식이 파악가능해지는 실재적인 물질)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순수한 의미작용의 영역을 떠나 간접적인 추론의 영역에 파고 들어가 버리는,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같은 식으로 단지 간접적인 모든 과정에 포함되어 완전히 불확실함에 맡겨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