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igi Pareyson
Luigi Pareyson

보다 높은 가치실현을 지향하고 소여(所與)의 현실에 제의하고, 그것을 변화해가는 역동적인 현상(現象). 그 때 창조(creativity)란 이 지향성을 보이는 현상일반을 말한다. 따라서 좁은 의미로 창조는 산출활동(産出活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산출 주체인 사람도 그 소산도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은 창작으로부터 감상자에게 이르는 모든 위상이 창조성에 의해 채색된 전형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산출은 물론 그 작품 자체도 창조적이다. 예술작품은 단지 창조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만들어진 후에도 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지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작품이 생물과 같이 저절로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작품의 창조성은 실제로 감상자의 해석을 통해서 발휘되는 특질이다. 작품은 가장 뛰어난 본연의 자세를 내보일 것을 요구하고 그러한 해석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창작ㆍ작품ㆍ해석의 세 가지 국면을 창조성이 꿰 하고 있다는 사상은 이탈리아 미학자 루이지·패리슨(Luigi Pareyson, 1918-)이 전개하고 있던 것이며, 그는 이 창조성을 ‘형성성(形成性 formativit)’이라고 부르고 있다.

앞에서 말한 보다 높은 가치라는 것은 창조성에 관해서는 항상 보다 높은 가치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해도 무엇인가의 의미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간에 이것은 상대적인 규정이며 이 상대성은 창조성의 개념에서 어떤 애매함을 초래한다. 다시 말해, 실현되는 것을 비교함으로써 보다 높은 가치가 인간에 의해 개념의 실질성이 크게 변화한다. 일반사람들에 있어서는 흔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특정한 개인에 있어서는 창조적이라고 하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성장과정에 있는 어린이의 경우에 현저해서 교육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창조성에 있어서 중시되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면 일반적인 관점에 있어서 창조적이라고 보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당연히 문화의 현상(現狀)에 있어서 예전에 없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시대의 경과와 함께 초극(超克)되어 가는 것이며, 인간적인 현상(現象)에서는 상대성이 항상 따라다닌다. 이것에 대해 절대적인 가치로서의 존재를 실현하는 신의 창조(허무로부터의 창조)를 규정하게 된다. 이 신의 창조는 모두에서 기술한 정의는 아니지만, 일종의 이론적 한계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에서도 끊임없이 넘을 수 있는 것 같아도 넘을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술에 있어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예술이 진보개념으로 친숙해지지 않는 것은, 근세의 신구논쟁이 남긴 인식이다. 세상사는 시간과 함께 사라져 가지만 훌륭한 예술작품은 사라지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사라진 적이 없다. 이것은 결코 그 이전 예술의 본연의 자세를 초월했다는 의미에서의 가치는 아니다. 반드시 다음 시대에 의해 초극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여전히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신선함, 혹은 가치는 시대적인 상대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척도에서의 적합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척도 혹은 기준일지는 창조를 생각할 때 중요한 논점이 된다. 그러므로 창조성의 단계로서 ① 특정 개인에 관계되는 주관적인 창조성, ② 객관적으로 초월할 수 있는 상대적인 창조성, ③ 인간적인 척도에 있어서 절대적인 창조성, ④ 신적인 절대적 창조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술창조성으로 문제되는 것은 제3의 인간적·절대적 창조성이지만, 다른 제3자도 이론상으로 비교하여 고찰하면서 참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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