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Ⅳ
그러나 우리들이 이전에 숙고한 것을 상기해 본다면 표출이라는 사고방식과 여기에서 브로토와 웰치가 주장하고 있는 사고방식의 대립이 바로 위의 인용문에 의해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것도 일관해서 논박해야 했던 것은 어떤 표상의 심볼적인 내실이 어떤 표상에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그 표상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 표상의 구별 가능한 실재적 부분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바로 그 가정 때문이다. 의미한다라는 것과 현실 존재한다라는 것은 양자가 하나의 표상이 두 개의 구성으로 나타낼 수 있다든가, 양자가 이 표상을 합성한다는 의미로 등질(等質)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브로토와 웰치에 의한 개념의 표현으로서 선택된 정식으로 보면 의문에 여지가 없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 정식은 A를, 즉 일반자를 나타내는 기호와 특수자 또는 개별자를 나타내는 기호가 단순한 플러스 기호로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로 일반자와 특수자가 개념의 내포와 그 범위가 생각되고 있다는 것과 지각이나 감성적 직관에 있어서 선택된다는 것이 서로 융합하는 것일까?
이러한 가산(加算)적인 표상에 따라서는 개념이 특징을 돋보이게 하는 유기적 통일성이 완전히 모두 공존으로 변해 버린다. 어떤 특정한 개념을 나타내는 명제함수 ( )에 있어서는 함수 바로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과 그 함수에 의해 총괄되는 각각의 값을 나타내는 표현과는 동일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여기에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제반 계기를 가산할 여유가 없다. ( )라는 표현은 그것을 별개로 존재하고 있는 구성부분에 분해하는 것으로 첨부된 ( )를 +로 해 버리는 것에 의해 이해 가능하게 하려고 하는 그것 자체 모순이 있다. 함수기호 y는 초등산술의 연산에 의한 변수로써 다른 량(量)과 결합되는 것 같은 개별의 수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개념 가운데에서 그 계열의 각각의 항목이 계속해서 규칙을 나타내는 일반항목과 비교한 적이 있다. 계열의 이 법칙은 그 계열에 속하는 각각의 요소를 제반조건으로 제한하지만, 그러나 그 법칙 자체는 계열의 한 항목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½,⅔, ¾이라는 산술적 수열은 n/n+1이라는 일반적 표현에 의해 나타나지만, 이 n/n+1은 개별 량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열의 전체를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인 단순한 총화(總和)가 아니라 어떤 특징적인 관계구조로 기하학적으로 예를 들어 보아도 동일하게 원추곡선을 경과해 일반개념을 얻는 것은 각각의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의 이미지가 서로 뒤섞이고, 하나가 뚜렷하지 않은 전체상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원과 타원, 쌍곡선과 포물선이 완전히 명확한 한정된 기하학적 형태로 견지되면서도 동시에 어떤 새로운 하나의 관계연관에 끼워 넣어지는 것이다. 한 절단면의 결과를 명확하게 한다. 원리적으로 말하면 직관적 개념이라는 가장 단순한 경우이다. 직관적 개념도 또한 결코 다양한 감성적 인상이나 기억표상의 단순한 집괴(集塊)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특유한 분절(分節)을 포함하면서 어떤 조직형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직관적 개념에 있어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정리해서 간파된), 그러나 그 다양한 구성분(構成分)이 서로 섞이게 한다는 방법이 아니라 얼마간의 결합 계기로 비추어 그 연관이 확정되는 방법에 의해서이다. 그리스어에서는 달을 측정하는 것(멘)이라고 부르고, 라틴어로는 그것을 비추는 것(luna)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명명의 근저에는 서로 다른 직관적 개념이 있다. 이 직관적 개념은 어느 쪽의 경우에도 비교나 관계를 맺는 동기로서 뿐 아니라 그것 자체는 명료하게 어렴풋이 무엇인가 보이는 시점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이 시점이 인식 후의 진전에 있어서 자기의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하지만 그것이 인식의 객관적 구축과정에서 보기에 따라 바뀌게 되지만 어쨌든 당장은 좋다.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개념의 내포나 과학적 가치에는 영향을 미쳐도 단순한 형식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예를 들면, 몇 개의 언어에서는 나비를 새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것에 의해서 표현되고 있는 사고가 생물의 질서를 특정한 자연과학적 규준, 즉 형태학적 기준이든지 생리학적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데까지 진전되면 해소되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 그러한 기준 대신 직관적 계기만으로 착안하는 관계를 맺는 시점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시점도 별도의 의미측정 기준을 나타내고 있다. 단지 과학적 개관(槪觀) 입장에서 보면 이 측정기준이 또 다른 완전한 측정기준으로 바꿔 놓을 수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