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과 대상 Ⅶ
헬름홀츠의 지각이론에 있어서, 또한 그의 인식이론의 구축에 있어서 인과기능이 이중의 기능, 근본적으로 둘로 분열된 기능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밝혀진다. 인과기능은 자연의 개념적 파악의 가능성 조건이라고 하는 경험적 관찰의 다양성을 엄밀한 통일을 가진 질서로 통합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경험적 대상의 개념에 다다르는 것도, 인과기능에 의해 처음으로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에 인과적 사고의 형식에 의해 완전히 별도의 길로 밀어 버린다. 즉, 현상의 순수한 연관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의 현상으로부터 미지의 근거 자체에 있어서는 영구히 인식할 수 없는 근거에 소행적(遡行的)으로 추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헬름홀츠의 학설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동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기호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감각이 기호로서 도움이 된다는 것은 우선 감각이 지시하고 있는 경험이다. 따라서 지각에 앞장서고, 또한 지각과는 무관계하게 하나의 현상을 한 개의 현실적인 물질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경험의 진전에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지각을 만나는 것이 틀림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인가 그 어느 것인가 이다. 경험으로부터 출발할 수 없고, 또한 현상의 경험적 연관의 법칙을 따라서 나아가지 않으면, 얼마간의 물질의 현존을 추측하거나 연구하거나 하는 것을 허무하게 하는 것 뿐이다.
헬름홀츠에 의해 수행된 『생리학적 광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는 전체가 칸트의 이 대목을 방법상의 모범으로 여기면서 이른바 그 모토로서 채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헬름홀츠에 있어서도 또한 현상에 대해서 현실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성격은 현상이 일관된 경험적 제법칙을 따라서 결합되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헬름홀츠를 투사이론이 갖는 모든 곤란한 점을 다시 되돌리게 된 또 하나 별도의 견해가 직접 병존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적인 것을 뜻하고 있는 기호를 그것 자체 그 대상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는 견해이며, 인식의 과제는 바로 야기하는 활동과정이 역전하는 듯이 생각되기도 한다.
활동의 길은 밖로부터 안으로 향하고 지식의 길은 내적인 것을 외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 주어진 감각으로부터 출발해서 주어질 수 있는 것이나, 주어질 수 없는 것으로, 즉 감각의 피안에 소행적(遡行的)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면 안되게 된다. 그러나 이 추론의 출발점으로 보면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감각이 물질에 대하여 갖게 되는 인과적 의존관계는 결코 감각 물질의 기호로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상정(想定)되고 있는 실재적 관계는 그것만으로 실재적 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표출적 관계를 충분한 근거로 포함할 수는 없다.
대상을 시사하고 표시할 수 있는 결과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가능성은 단지 지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기호의 권역을 떠나 참된 기호, 즉 진(眞)에 근원적으로 유의미한 기호의 권역에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이해 불가능하게 된다. 여기에 출현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곤란한 체계적 근거는 계획되고 있는 것이 원리적으로 직관할 수 없는 관계를 어떤 직관적 대상이나 대상상호간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차입한 아나로기(analogy)의 도움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에 대한 표상의 관계’가 구성되는 순수한 의미 카테고리의 고유성과 특수한 의미는 그 카테고리의 근저에 얼마간 존재상의 규정이 인과관계에 얽히는 제규정이지만, 여러 사물 사이의 동등성이나 유사성에 얽히는 제규정으로써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따라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유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직접적인 의식내용의 성질이나 이미 눈앞에 있는 현실의 이미지로 거슬러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일반의 순수한 정립 가능성의 제조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제조건에는 순수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고작용은 이 개념의 힘을 빌려 대상적 의미가 갖추어져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서 개념의 엄밀한 논리학적 의미를 명제함수로 포착하고 그것에 의해서 정의해 보면 이것이 명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