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창조와 수용 Ⅲ

예술개념에 있어서 창조는 모방과 대비된다. 창조의 반대개념으로는 모방이지만 그렇다고 예술론의 고전적 이론으로서의 자연모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자연모방에 있어서 창조적인 것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충실한 자연모방과 비교해서 공상적인 형상을 그리는 것은 보다 창조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연모방설을 공상 면으로부터 수정하는 움직임은 이미 고대 말기에 있었다. 이 경향에 대해서는 필로스트라토스(Philostratos, 2-3C) 이름으로 거론되는 것이 통례이다.〈Cf,Tatarkiewicz, History of Aesthetics, I, 285, pp. 297-98 헬레니즘 시대의 바로크적인 취미경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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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력한 사조(思潮)가 되는 것은 역시 르네상스 이후이다. 선구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15세기의 철학자 니콜라우스·쿠자누스(Nicolaus Cusanue)의 생각으로서 스푼과 같은 도구를 고안하는 것은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 이상인 것이다. 스푼의 형은 자연에는 없고, 정신의 아이디어를 모델로 하는 것이며 그 점에서 그 고안은 ‘무한한 기량(art infinita)’에 가깝다는 것이다.〈Nicolaus Cusanue, Idiota de mente, cap, II; Cf. Tatarkiewicz, idid., III, p. 64-65〉

이것은 이미 인간의 정신이 신으로 착각하는 생산력을 가진다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서 그 연장선상 위에 예술가를 이미 ‘한 사람의 신(alter deus)’이라고 보는 개념이다. 그리고 인간의 창작력을 강조한 근대적인 개념이 천재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고찰은 창조개념을 제시해서 파고든 것은 아니다. 창작의 실태에 관한 고찰은 후에 저촉되는 수사학(修辭學)에 있어서의 고전적인 모델을 제외한다면 금세기가 되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 창조성의 개념이 친근해지고 있는 것은 금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개된 심리학과 교육학의 연구가 크게 공헌하고 있다.

때 마침의 실존주의철학의 융성으로 인해 자기실현으로서의 창조성을 강조한 것이며 창조를 천재의 예외적으로 초절적(超絶的)인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일상적인 행동 안에서 편재(遍在)하는 창조적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주관적 창조성을 지적하면서 특히 사고의 창조성에 주목하고 있다.

철학자 니콜라우스·쿠자누스(Nicolaus Cusanue)
철학자 니콜라우스·쿠자누스(Nicolaus Cusanue)

 

창조성 개념은 창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창조의 어떠한 측면에 주목할 것인가에 따라 이론의 성격이 크게 좌우된다. 그 유형으로서는 심리학적 개념과 구조론적 개념을 구별할 수 있다. 우선 전자는 창조과정에 있어서의 심리현상에 특이한 점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이다. 고래(古來)의 영감설(靈感說)이나 그것을 계승한 천재설에는 이 경향이 현저하게 인정을 받는다. 이 입장은 창조적 심리의 특이성을 강조하고, 창조의 주체를 이상(異常)한 것, 정신병자에 가깝게 보는 견해를 조장(助長)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금세기에 와서도 활발히 전개된 심리학은 오히려 창조를 인간에 있어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창조적 심리를 창작과정의 수반현상(隨伴現象)이 아니라, 창조의 조건으로서 성격형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일례를 든다면, 에리히·프롬(Erich fromm)은 다음 다섯 가지를 창조성의 조건으로 거론하고 있다.〈The Creativity, pp. 48-68〉

ⓛ 의문을 가지는 능력, ② 집중력, ③‘나’의 감각, ④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힘, ⑤ 매일 다시 태어나려고 하는 의지이다. 이 조건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바로 어떤 적극적인 ‘태도’이며 창조조건일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지침이 될 수도 있는 유효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태도가 즉시 어떠한 창조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론으로도 이 사고방식의 조건은 변함없다. 예를 들면, 롤로·메이(Rollo·May)는 창조적 과정으로 만남과 강함, 그리고 그것이 ‘세계와의 상호적 관계를 맺게 되는 세 가지를 들고 있지만 이것은 결국 어떤 종류의 만남에 의해 창조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The Nature of Creativity, pp. 58-68〉

또한 주관성의 차원을 넘는 규정이 아니다. 추구하는 구조론은 제작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구조론의 고전은 수사학에 있어서의 변론작성 프로그램이며 창작론의 유일한 고전적 이론이다. 고대 말기에 성립하고 있었던 이 프로그램에 의하면 변론의 작성은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① 構想(inventio), ② 配列(dispositio), ③ 措辭(elocutio), ④ 記憶(memoria), ⑤ 演出(actio)이다. 이 중 최후의 ④와 ⑤는 특유한 구두변론(口頭辯論)이며 문장의 작성은 처음의 ①과 ②와 ③의 단계에서 완결한다. 이 세 가지 중 창조적인 계기는 최초의 구상(構想)의 단계에 집약되고 있다. 이것은 영감(靈感)의 사상(思想)과 즉응(卽應)하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스푼의 고안과 예술작품의 창작과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의 고전적인 이론이 된 그레이엄 왈라스(Graham Wallas)의 4단계설에는 ① 준비기간(preparation), ② 회태(懷胎)기간(incubation), ③ 조명(illumination), ④ 검증(verification)이 구별되고 있다.〈The Art of thinking,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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