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개념(槪念)과 표상(表象) Ⅲ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개념문제의 고르디아스(Gordias)의 매듭이 풀어지지 않고 끓어진 것 뿐이다. 따라서 각각의 인상의 다양성과 분산상태로부터 뚜렷한 하나의 전체적 표상으로부터 달아나도 그것이 정말로 이러한 다양성이나 분산상태로부터의 구출이 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다양성을 포기하기를 바라고 있던지 아니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형성의 의미는 개념이 형성되는 것에 의해 다수의 특수한 미궁을 방황하고 있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참된 개념이 직관의 세계를 배반한다면 그것은 한층 확실한 형태로 돌아가려고 하고, 개념활동은 특수한 규정이나 한정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에 대하여 그런 기능은 최고도인 개념, 즉 엄밀과학의 개념에 내재하지 않는다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개념의 기능이 완전히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세밀과학의 개념에 있어서 만이 아니라 그 기능이 개념에 있어서야 말로 가장 명확히 포착되어 직접 논리적 분석에 채워질 수 있는 것이며, 그 기능은 역시 이 개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능은 브로토와 웰치가 ‘직관적 개념’이라고 부른 이론적·과학적 개념 전 단계이며 배아 세포처럼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논리를 넘어선 직관적 지능의 유행시대
논리를 넘어선 직관적 지능의 유행시대

 

이러한 직관적 개념도 역시 유개념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결합을 위한 개념이다. 즉, 그것은 사물이 불선명한 공통상(共通像)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각 가운데에서 개별적인 것으로서, 혹은 비교적 개별화된 것으로서 드러나는 것을 중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색이라는 직관적 개념은 빨강·파랑·황 등이 무엇인가 불명확하고 혼잡한 것 같은 류의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이 직관적 개념에 의해서야 말로, 감성적 체험 전체로부터 어떤 특정 관계계기에 의해, 빛과의 관계나 눈과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만약 개념이 본질상 많은 질서나 구조나 구체적인 종류의 차이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이것들의 차이를 균등하게 해 버리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면 어째서 그러한 질서나 구조나 구체적 차이가 이러한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만약 차이가 개념의 힘을 빌려서 이해되거나 개념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념에서는 차이가 없어져 버린다고 하면 개념과는 균등한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체계의 대립에 멈추지 않고 이 대립의 한층 깊은 근거로 질문하면서 다시금 중심문제, 즉 표출의 문제로 돌아가도록 지시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표출의 이해나 그 가능성의 조건의 이해야말로 개념의 이해를 좌우해 규정하는 것이다. 브로토와 웰치가 그들의 이론에 있어서 뚜렷하지 않은 표상에 호소한다고 해도 그러한 것이 행해지는 것은 분명히 그들에 있어서는 이러한 표상, 즉 철저하게 규정되어서 이른바 애매한 표현으로 변하는 표상이야말로 많은 내용의 표출로 드러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떤 표상이 비교적 미규정이라는 것만이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성격을 기초로 확고히 하는 것, 즉 그 표상에 어느 때는 이 의미에서 또 어느 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Conoce los beneficios del aburrimiento! - La Mente es Maravill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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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내려진다.
‘뚜렷하지 않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성질이야말로 맹아상태의 A+에 개념의 내포와 개념범위의 병립이라는 주요 특징을 주지만, 이것이 개념의 이론가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잡제(雜題)를 부과해 온 것이다. 단지 하나의 표상이 많은 대상을 지명하기 위해서는 그 표상은 이같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모든 근거에서 우리들이 줄 수 있는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떤 A+는 그 A가 그것과 닮아 있는 한계 내에서라면 다양한 표상으로 변할 수 있고, 그것이 현존하고 있다면 서로 다른 제반 표상에서도 동정판단(同定判斷)에 의해 손쉽게 결부시킬 수 있으므로 A+가 이것들 표상에 대응하는 대상을 지명하게 되는 것이다. A+가 각양각색의 동정판단이 충분하다는 그 성질이야말로, 지명(指名)한다라는 개념의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해서 분명히 다른 두 개의 개별적 이미지, 예를 들면 엎드려 누워 있는 개의 이미지(L)와 서 있는 개의 이미지(S)가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L과 S에 특정한, 내가 알고 있는 다양한 개의 자세로부터 A+를 형성하면 내가 그것들 이미지로부터 그 개가 뚜렷하지 않은 전체표상을 이끌어 내면, 이 뚜렷하지 않은 표상에는 어떤 때는 엎드려 누워 있다라고 하는 표상(1), 어느 때는 서 있는 표상(2)이 붙여질 수 있고, 따라서 (A+) 그것이 나에 대하여 어느 때는 (A+1)을 또 어느 때는 (A+2)를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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