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는 치정살인의 비극적 주인공 카르멘이 새롭게 각색되어 무대에 올랐다.
카르멘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1845년 원작소설을 통해서고 30년 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각색대본으로 카르멘은 비극적 죽음을 맞았음에도 남자를 유혹하는 자유분방함과 그 연애관을 비난받는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서울시극단이 선보이고 있는 연극 '카르멘'이 지난 9월 8일부터 세종문회회관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카르멘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졌듯 1820년경 스페인 세비야의 한 부대, 돈 호세의 약혼자 미카엘라가 돈 호세 어머니의 편지와 함께 그를 찾아온다. 미카엘라를 본 경비대장 즈니가는 착한 여자는 재미가 없다며, 매력 있는 여자, 집시 여인 카르멘에게로 그를 이끈다. 그곳에서 만난 돈 호세와 카르멘은 서로 묘한 이끌림을 느끼고 이내 "이제 당신은 내 귀여운 카나리아에요?" 라는 말 한마디에 돈 호세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리며 비극은 시작된다.
8일 서울 중구 세종문회회관 M 씨어터에서 '카르멘'의 전막시연이 진행됐다. 이후 가진 간담회에는 고선웅 단장과 배우 김병희, 서지우, 최나라, 강신구가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공개된 연극 '카르멘'의 무대는 투우장을 연상시키는 원형 구조물이었다. 돈 호세 역의 배우 김병희는 올곧고 단단한 군인 정신을 가진 군인이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 내면부터 무너져가는 과정을 표현했고, 카르멘 역의 서지우는 순간마다 불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남성을 유혹하는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진 집시여인을, 미카엘라 역의 최나라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며 연인 돈 호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역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집시와 투우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음악과 춤, 또한 연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였다.
원작과 오페라 대본에서는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인 뒤 그녀를 품에 안고 흐느끼는 돈 호세에게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담아 '버림받은 사랑의 희생자'로 보이는데 반해 이번 작품에서 돈 호세는 "내가 아는 건 죽을 때까지 널 따라다닌다는 거야"라는 대사처럼 훨씬 더 집착과 폭력성이 부각되어 공포스럽기까지 한다.
고선웅 단장은 "이 작품을 처음에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게 중심 감정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었고 바람직해보이지 않아서 그걸 보여주려고 했다. 카르멘은 그렇게 큰 잘못이 없었다는 마음을 관객들이 보시고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이다"라며 연출 의도를 전했다.
우연히 만난 집시연인 카르멘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모든 것을 읽고 결국 카르멘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끝모를 집착에 빠지는 돈 호세를 열연한 김병희는 "사랑이라고 하면 상대를 아껴주고 귀히 여겨주는 거라는 의미가 있는데 돈 호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인물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집중하다보면 연민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옳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카르멘을 연기한 서지우는 "자유에 대해서 제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굉장히 많이 알아보고 깨달으려고 노력했다. 잘 표현되고 전달되길 바랐다. 춤이 좀 어려웠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미카엘라 역의 최나라는 "맡은 역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는데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공감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서 "남녀를 떠나서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믿음,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가가니까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롭게 각색된 연극 '카르멘'의 대사는 비일상적인 연극 대사로 이뤄졌다. 이에 대해 고선웅 단장은 "원래 뮤지컬용 대본처럼 돼있는데 연극으로 하다보면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경제적이면서 시처럼 낭송을 하는 것처럼 예스러운 연극의 맛도 나고 문학적인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면 고상한 느낌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오페라나 뮤지컬 등에서 카르멘의 이미지는 보통 붉은 드레스를 입고 플라멩코를 추는 육감적인 매력의 여성으로 표현됐다. 이번 고선웅 단장의 연출에서의 카르멘은 자유로운 내면을 부각시키며 그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 돈 호세의 스토킹 같은 과정을 보여주면서 지난 200여 년 동안 각인됐던 카르멘의 자유분방한 연애관에 면죄부를 주는 인상이었다.
고선웅 단장은 "2000년 즈음 구상한 작품이었다. 극단적으론 전세기적 인간이 있고 후세기적인 인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변혁의 시기에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과 구속하는 사람의 충돌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작년에 작품을 세팅하면서 지금 세상에 다시 한 번 하기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연극이 갖고 있는 본연의 연극적인 생각이 재래연극처럼 고전이 갖고 있는 현대적 의미를 여전히 담은,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극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원형 무대에 대한 연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고선웅 단장은 "여러 장면 전환도 많고 공간 변화가 많아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투우장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공간 안에서 투우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시계로 보이기도 하고 원심력, 구심력을 돌면서 표현할 수 있어서 힘의 관계로 풀고자 했다. 안쪽에선 투우가 벌어지고 밖에선 돈 호세와 카르멘이 투우처럼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 구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23 연극 '카르멘'은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이고 나서 "'내가 카르멘을 죽였다'가 아닌 '내가 카르멘을 가졌다'고 외치며 자신 스스로도 기꺼이 그녀 곁을 따라간다. 미카엘라도 실성하지만 결국 돈 호세 곁을 따라가는 선택을 하며 엔딩을 맞는다. 이게 최근 스토킹, 안전이별 등을 이야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선웅 단장의 '카르멘' 엔딩인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몫인 것이다.
연극 '카르멘'은 10월 1일(일)까지 세종문회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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