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상의 아트힐링] 물의 불꽃우리는 흔히 자신과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 사람에게 이끌린다. 자신에게 없는 어떤 능력이나 자질을 보완하려는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서로 친해지거나, 결혼을 통해 결합을 하고 나면 막상 비난과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간의 차이가 자신을 보완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불편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보완 쪽에 좀 더 시선이 가면서 이끌리지만, 사람 마음은 일단 보완이 되고 나면 나머지 차이가 두드러져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서로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비난하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증상 외에 또 다른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변인들이 함부로 건네는 조언이다. 위로랍시고 무심코 꺼내는 다음과 같은 말들은 오히려 비수가 되어 우울증 환자의 마음을 찌른다.“다 마음먹기 나름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다 견디며 살아.” “힘을 내려고 노력해 봐.” 등.우리는 뭔가 위로를 하고 싶을 때 조언을 하곤 하는데, 조언은 대체로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조언’은 서로의 평등한 관
필자는 최근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어릴 때는 어른은 부모를 보낼 때 슬프지 않은 줄 알았다. 어릴 때 친가든 외가든 조부모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어른들은 대체로 잘 웃고, 잘 드시고, 잘 떠들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하나뿐인 딸로서 장례를 치를 때 잘 웃고, 잘 먹고, 조문객들 사이에 앉아 수다도 곧잘 떨었다. 그러나 오히려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낳아 길러보고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게 된 상태에서의 이별은 오래 끓인 국처럼 더 진하게 슬프다.최근 몇 년간의 어머니의 투병과정이 잔혹하리만큼 만만치 않았기에, 또한
1447년 4월 20일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평생 잊지 못할 꿈을 꾼다. 절벽과 복숭아밭으로 가득한 무릉도원을 꿈에서 생생하게 본 것이다. 안평대군은 꿈의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도록 하였고 사흘 만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매죽헌에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라는 제서(題書)를 달게 되었다. 기암절벽 위에 복사꽃이 만발하고, 초막과 폭포수 아래 빈 배가 보이는, 바로 그 유명한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라는 걸작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풍은 이후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와 대비되는 관념 산수화로 불리게 된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이 싹을 잘 지켜서튼튼하게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은순전히 사람의 몫이다.인연이란, 인내를 가지고공과 시간을 들여야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한 포기 난초인 것이다.- 헤르만 헤세 - 우리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나를 먹여 살리는, 오늘 아침 밥상에 올라온 밥과 반찬들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이 포함되어 있다. 어느 이름 모를 농부로부터 이름 모를 유통업자와 판매업자, 이름 모를 택배기사님 등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 직접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4년 전인 2019년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한국인 승객 33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가 크루즈 선박과 충돌 후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가 있었다. 그 후 수색작업이 이뤄지는 가운데, 계속되는 폭우로 강의 유속이 빨라지면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피해자 가족들이 머나먼 낯선 나라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을 심정을 떠올리니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러한 괴로움을 풀어내기 위해 필자는 붓을 들었다.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100호 사이즈의 ‘고풀이’다. 고풀이란, 전라도의 씻
앤디 워홀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사실 당신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라고 하였다. 워홀이 말한 변화와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는 사실 다른 차원일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 일으키는 변화는 시간과 무관하다. 그러나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를 그 누구도 거스를 수는 없다. 오죽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과 변화에 대한 우리의 해석일 것이다. 어제의 강물은흘러가 없고 오늘의 강물 속에나는 있네. 태초부터 영원까지찰나의 쉼도 없이 흘러
4월은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어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T.S 엘리엇의 ‘황무지’ 중에서- 4월이 되면 우리는 흔히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T.S 엘리엇의 라는 시를 떠올린다. 꽃이 피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4월이 왜 잔인한 달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엘리엇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2년에 이 시를 발표했는데, 전쟁 이후 현대문명의 황폐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기도 하고, 부친의 작고와 아내와의 불행한 결혼생활 등을 잔인함의 이유로 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해석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심리적 고통에는 크게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경제적 곤란과 같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고통, 두 번째로는 실직과 같이 이미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고통, 세 번째로는 관계상의 갈등 등으로 보기 싫은 사람을 보아야 하는 고통, 마지막으로 이별과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고통 등이 그것이다.그 중에서도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이다. 실제로 연구에서도, 상실의 슬픔으로 인한 충격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토마스 홈즈 박사가 개발한 스트레스 측정 척도(Holme
봄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봄을 누릴 자격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오직 겨울을 잘 견뎌낸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수잔 비소네트는 ‘낙관주의자란 봄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봄’인 낙관주의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얼음의 빗장도 서서히 느슨해질 무렵나는 그만 당신의 가슴 위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처음으로 시린 손 짚고 가만히 귀를 대어보았더니바닥 깊은 곳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아아, 당신은 우리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몸소 추위를 마련했던 것입니다당신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실존치료라는 심리치료이론을 창시한 빅터 프랭클 박사는 폭력과 죽음이 난무한 수용소에서 자신도 굶주리면서도, 더 힘든 동료에게 마지막 빵을 건네는 이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로 유명한 프랭클 박사는 우리의 삶에는 세 가지 가치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즉, 활동을 통해 실현되는 창조적 가치와 자연이나 예술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경험적 가치, 그리고 태도적 가치가 그것이다.이 중에서도 태도적 가치란, 주어진 삶과 환경은 변화시
쿠사마 야요이는 원래 예술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그녀에게 보이는 환각들을, 그림으로 옮겨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사랑보다는 학대를 받으며 골방에 파묻혀 그림만 그리던 그녀는, 열 살 무렵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가 사방으로 번지면서 붉은 점으로 뒤덮이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 꽃무늬는 둥근 물방울무늬로 변형되어 훗날 그녀의 작품 제작에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고, 그녀의 물방울무늬에 대한 강박은 관람객에게 전이된다.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
새끼 말은 출생 후 약 30 분 정도 경과하면 스스로 일어나고, 한 시간 정도 경과하면 어미젖을 빨게 된다. 뻐꾸기는 어미에 의해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의 둥지에 버려져도 진짜 어미의 알들을 밀어내며 살아남는다.이에 비해 우리 인간은 매우 연약하다. 태어나서 최소 3년에서 5년까지, 심지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철저히 부모에 의존해야 하며 혼자서는 생존하기 힘들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건 오로지 집단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인(人)자는 서로 기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에 서로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은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개성화 과정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림자의 각성을 통해서 시작된다. ‘그림자’란 각자가 무의식에 억압해 놓은 열등한 특성들,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 측면에 있는 각자의 분신이다. 그림자는 부정적이며 열등한 측면들과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도덕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예를 들어 소위 ‘여우같은’ 성격의 친구가 이상하게도 너무 거슬리고 얄밉다면, 자신의 그림자를 대신해서 보여주는 사람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에 이해할 수 없는 빈틈이 생길 때, 흔히 그 여백을 어떻게든 메우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모 연예인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갑작스런 은퇴를 하겠다고 발표하면, 아마도 결혼을 하는 게 아닐까, 혹은 불치병에 걸린 게 아닐까, 혹은 연예계에 신물이 난 게 아닐까 각자 추측하게 된다. 대체로 소문은 그렇게 발생하게 된다.이처럼, 어떠한 형태를 자신에게 보다 친숙한 패턴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려고 하면서 빈틈을 채우려는 경향을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구상화(Reification)라고 지칭한다. 구상화란,
소녀는 푸른빛이 도는 옷을 입고 언덕 위에 서 있다. 이 쪽 언덕에는 풀이 무성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저 쪽 언덕은 바람이 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막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정상 부근엔 미처 녹지 않은 눈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까지 이르는 길에 이 소녀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 저 언덕 너머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풀 한 포기 없는 심심함을 견뎌야 한다.-작가 노트 중에서- 이 작품은 나의 연구실 벽에 붙어 있다. 연구실을 방문하는 내담자들의 이 그림에 대한 반응은 모
니체는 말했다. “나는 불꽃처럼 스스로를 불사르고 있다. 내가 붙잡는 모든 것은 빛이 되리라. 내가 버리는 모든 것은 어둠이 되리라.”우리는 누구나 불꽃처럼 빛나기를 원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유능해지고, 유명해지며, 성공하고자 한다. 그러나 불꽃이 되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과정은 두렵다. 하나의 욕망을 위해 다른 모든 욕망을 불태우고 재로 날려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린 빛나고 싶지만 빛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은 포기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유명해지고 싶지만, 비난을 받고 싶지는 않다. 유명세에 비판은 필수옵션이라는 사실을
방어기제란, 자아가 위협받는 불안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에 의하면, 개인의 방어기제는 자아의 강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적응성도 예측할 수 있다. 즉, 성숙한 사람일수록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30대로 상당한 미모를 지닌 그녀는, 분노조절장애를 호소하면서 나의 상담실을 찾았었다. 자신보다 아랫사람이거나 아이와 같은, 특히 약자를 향한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그녀의 죄책감과 괴로움이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중요한 거야.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해. 땅에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영화 ‘그래비티’ 중에서-중력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네 가지 힘 가운데 하나로 어떤 공간상의 두 질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력에 의해 우리는 지구 밖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안전하게 땅 위를 거닐고 있다. 한 편으로는 이러한 중력에 의해 우리는 땅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땅에 매어 살아간다.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중력이 존재한다. 특히 가족이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기도 하
한 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진을 예술치료 프로그램으로 개발해서 국내에 보급하는 데 힘써온 필자는,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푼크툼(punctum)’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가 사진에 관한 그의 저서 ‘밝은 방’에서 제안한 이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찔린 자국이나 작은 구멍, 작게 베인 상처’를 의미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푼크툼’을 시각적인 작품을 볼 때 전형성을 깨면서 날카롭게 찔러오는 어떤 감정, 어떤 감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우연히 인사동 올 갤러리에서 ‘꿈꾸는 스핑크스’라는 작품을 마주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