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된 해바라기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중요한 거야.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해. 땅에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중력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네 가지 힘 가운데 하나로 어떤 공간상의 두 질점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력에 의해 우리는 지구 밖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안전하게 땅 위를 거닐고 있다. 한 편으로는 이러한 중력에 의해 우리는 땅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땅에 매어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중력이 존재한다. 특히 가족이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붙들어 매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지 않아 제대로 사춘기를 겪지 못하고,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청춘들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다.

우울증이란 진단명을 달고 상담실을 찾아오지만 들여다보면, 부모에게 붙들려 있는 영혼들인 경우도 많다. ‘우리 가족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똘똘 뭉쳐서 한다’고 자랑하지만, 알고 보면 한 명 한 명 가족구성원이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병리적인 상태로, 가족상담학에서는 이를 ‘융합’이라고 부르며 정신적 불건강의 원인으로 본다. 아내가 남편만을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다가 자식이 다 커서 독립한 후에 오는 심리적 공허함은 ‘빈 둥지 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건강한 가족이란, 어릴 땐 충분히 의존할 수 있지만 커서는 따로 또 같이 움직일 수도 있는, 서로가 침해하지 않는 명료한 경계선이 있는 가족인 것이다. 가족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서 우뚝 설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정신적으로 독립하며 상담은 종결된다.

        백지상, 해가 된 해바라기 , 120 x 73, Oil on canvas, 2019
        백지상, 해가 된 해바라기 , 120 x 73, Oil on canvas, 2019

 

기다리다 바라보다 뻗어가다 지쳐

놓아버린 순간

꽃대를 꺾고

스스로 해가 되었다.

-작가노트 중에서-

필자는 누군가의 자식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아내의 이름으로 가족에게 매이고, 의존해왔지만 무수한 과정들을 견디어내고 우뚝 설 수 있게 된 내담자들에게 헌정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바로 ‘해가 된 해바라기’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고 살지만, 해바라기가 꽃대를 끊고, 중력을 이겨내며 떠올라 스스로 해가 된다면 어떨까?’ 라는 발상에서 이 그림은 시작되었다.

아기가 기다가 걷는 과정을 떠올려보라. 자신이 매어있던 땅을 짚고, 이겨내며 벗어나, 비로소 두 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정신적으로 독립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은 마치 중력을 다루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중력을 다루게 될 때, 비로소 두 발로 걷게 된다. 두 발로 걷게 될 때, 비로소 목적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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