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스핑크스

한 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진을 예술치료 프로그램으로 개발해서 국내에 보급하는 데 힘써온 필자는,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푼크툼(punctum)’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가 사진에 관한 그의 저서 ‘밝은 방’에서 제안한 이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찔린 자국이나 작은 구멍, 작게 베인 상처’를 의미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푼크툼’을 시각적인 작품을 볼 때 전형성을 깨면서 날카롭게 찔러오는 어떤 감정, 어떤 감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우연히 인사동 올 갤러리에서 ‘꿈꾸는 스핑크스’라는 작품을 마주했을 때 필자는 ‘푼크툼’을 느꼈다.

이 여성스럽고도 요상한 모습의 괴물은 버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날아오르고자 하는 걸까.

                 박정해, 꿈꾸는 스핑크스
                 박정해, 꿈꾸는 스핑크스

 

운명의 동굴로 영웅 오이디푸스 검은 형상을 쫓아

부러진 한쪽 날개

다시 날아오르는 스핑크스여

-박정해의 시, ‘꿈꾸는 스핑크스’ 중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흔히 오이디푸스라고 하면 어머니를 사랑하여 아버지와 경쟁하며,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림을 신화에 접목시켜 온 시인화가 박정해 작가는 스핑크스의 숨겨진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잘 알려진 바대로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뚱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괴물로,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인간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인간을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러한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를 보고는 사랑에 빠져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고, 스스로 비극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꿈꾸는 스핑크스’란 부러진 한쪽 날개로 오이디푸스를 찾아 헤매며 다시 날아오르기를 꿈꾸고 있는 스핑크스를 묘사한 작품이다.

그렇다. 괴물도 사랑에 빠지고, 괴물도 상처를 입는다. 괴물처럼 여겨지며 독하다는 욕을 먹는 많은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필자는 잘 알고 있기에, 스핑크스의 부러진 날개가 가슴에 와 닿았다. 괴물로 보이는 그 이면의 오랜 외로움이 사람을 잡아먹게 만든 게 아닐까.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혹은 구해주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가장 지독한 상처에 직면할 때 상처는 치유된다. 누구나 자신 속에 숨겨놓은 괴물 같은 마음을 들여다볼 때 부러진 날개는 회복된다. 작품 속에서 부활한 꿈꾸는 스핑크스처럼.

       인사동 올갤러리에서 필자(좌)와 박정해 시인화가(우)
       인사동 올갤러리에서 필자(좌)와 박정해 시인화가(우)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서양화가.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호주 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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